아이슬란드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1.
비행기가 이륙하려는데, 옆에 앉았던 남성분이 사라졌다. 승무원이 짜증 나듯 영어로, "지금 안전벨트 불 들어온 거 안 보이나요? 얼른 앉으세요. 곧 이륙합니다." 그분은 그러거나 말거나 오버헤드빈에서 짐을 꺼내고 있었다. 승무원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버렸다. 아무래도 한국을 조금 싫어하는 것 같다. 그 남성분은 그저 영어를 잘 이해 못 한 것 뿐일 수도 있다. 어떤 여성분에게도 짜증 내듯, seat! seat! seat! 을 정확히 세 번 외쳤다. 의자 똑바로 올리란 뜻이었는데, 그걸 잘 알아듣지 못하셨기에 지시에 따르지 못한 것뿐이다. 영어로 소리치며 마음껏 불친절할 권리가 있는지 모르겠다.
2.
옆자리 남성분이 껌을 무지막지하게 씹고 있다. 껌 씹는 소리, 그 소음을 기체 안 바로 옆자리에서 듣고 있자니 괴롭다. 게다가 나는 청력이 비정상적으로(?) 좋아서 저 멀리 귓속말도 잘 들리는 사람인데. 너무 괴로워서 한 마디 할까? 하고 고민에 돌입. 그런데 뭐라고 하지? ”저기요… 껌을 좀 살살 씹어주실 수 있을까요? “, ”저기요… 껌 씹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요. “ 아마도 이분은 누군가로부터 껌 씹는 행위 그러니까, 큰 소리(소음)를 내는 것에 대한 제재를 받아본 적이 없을 것 같다.
3.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약 14시간의 이코노미석 비행은 아기나 부모나 힘들 거란 생각을 한다. 방금 어느 외국인 아빠가 아기를 안고 복도를 지나다니며 아기를 달래는 걸 봤다. 쪽쪽이를 문 아기는 금방 잠에 빠져 들것처럼 잠잠해졌고, 연신 하품을 하는 아빠는 48시간 깨어있던 사람처럼 피곤해 보였지만, 둘이 합쳐진 모습만큼은 아름다웠다.
4.
기내식을 먹을 때, 음료수를 꼭 하나만 고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보통 맥주나 와인에 더해 물이나 주스를 함께 받곤 하는데, 이번 비행에는 앞주머니에 기본적으로 300ml 물병이 꽂혀있었다. 그래서 와인만 주문했고, 제이는 맥주와 제로코크를 주문했는데(정확히 말하면 내가 마시고 싶은 걸 또 주문한 셈), 전부 다 합치니 양이 많았다. 미니 와인병, 맥주 한 캔, 콜라 한 캔을 다 마실 수 있을 리 만무하지. 게다가 이미 인천공항 라운지에서 맥주 두 잔을 마시고 왔다. 와인병은 열어서 맛만 보았고, 어차피 경유를 해야 하니 남은 와인을 가져갈 수도 없는데, 내 욕심 때문에 낭비를 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밀려왔다. 기내식은 그런 식이다. 어차피 남길 때가 많은데, 그래도 일단 받고 보는 것. 기내식을 받아보는 그 자체에서 느끼는 순수한 행복. 죄책감을 상쇄시키는 설렘. 여행의 시작이다.
• 비행기에서 메모장에 끄적여 본 기록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