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처럼 똑똑한 애가 왜 남들처럼 인스타 라이프를 살려고 애써? 못 본 사이 정말 변했구나.”
약 10년 전쯤 함께 근무했던 외국인 G에게서 연락이 왔다. 장난기 많던 그는 조금 덜렁대기는 했어도 끼가 많아 라디오 DJ로 직업을 전향했었다. 한 때는 자기 나라에 함께 가서 비앤비 사업을 해보자고 조르던(?) 그였다. 그가 하는 말의 70퍼센트쯤은 알아서 거르던 나였고.
그런 그가 몇 년 만에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각자의 사정으로 연락을 끊은 지 오랜 뒤였다. 메시지는 삭제해버리면 끝이었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뒤끝으로 남아 내 속을 살살 긁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인스타 라이프를 살려고 하지 않는다고!!)
사람들 간의 ‘관계’라는 것에 대해 고심하고 그것들을 가지치기 한 적도 있다. 그만큼 나도 나이 들어버렸다는 뜻이겠다. 다이어리에 월 별로 동그라미 쳐 놓은 지인들의 생일을 챙기는 숫자가 줄었다. 잘 지내냐는 안부를 묻는 메시지를 쓰던 손가락의 움직임이 멈춰 서기 일쑤다. 마음 한 구석엔 찬 바람이 불었다가도 ‘아는 사람’을 모조리 잃어버리는 건 아닐지 걱정도 했다. 테두리 안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주고, 오랜만이라도 어색하지 않게 포옹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물론 새로 만나는 인연에 대한 기대감은 항상 품고 살고 있지만.
겉핧기식으로 나를 보여줄 수밖에 없는 인연이 생겨나는 건 속상했다. 어떤 계기가 없는 이상 나 역시 타인을 알 수 없겠다. 어쩔 수 없는 결과일지 모른다.
사람이란 시간을 두고 알고 지낼 수밖에 없는 사회적 동물이니까. 첫인상으로 평가하고 평가받으며 입에 오르기 마련이니까. 우린 곧잘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다른 사람을 오해하니까. 시간이 흐르면 변하기도 하는 게 사람이니까.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그에게 답장을 하고 싶었지만 대신 삭제 버튼을 눌렀다.
소위 디지털 노매드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굉장히 스마트한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복잡하고 힘겨운지, 그들이 어떻게 하루 24시간을 쪼개어 쓰고 1년 365일을 계획하는지 모르는 걸까? 여행 사진을 올렸다 해서 인스타 라이프를 산다는 걸까? 나에 대한 오해보다는 그의 무지함에 화를 돌렸다.
+
철없던 시절의 나 역시,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했다가 반성한 적이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입 밖에 꺼낸 말들을 후회하기도 했다. 상처 주기도, 상처 받기도, 그렇게 인연을 잃기도 하던 숱한 시간이 흘러 어른 여자가 되었다.
스스로 괜찮다 여길만한 보통사람일 뿐이다.
덧)
며칠 전 브런치 독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어요. 그분도 보통사람이더군요. :-) 어떠한 연유로 일을 그만두게 된 건지 궁금하다 하셨죠. 짧은 메시지로는 나누기 힘든 주제였지만 마음은 적당히 전해졌으리라 생각해요. 혹 비슷하게 궁금한 분들이 있을 것 같아 현재의 저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저는 여행기 완성을 목표로 함과 동시에,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을 하고 있어요. 생각보다 시기가 늦어지고 있어 초조한 마음이 들고 있지만 말이죠.
제가 좋아하는 여행과 언어를 도모하는 작은 사업을 구상하고 있답니다. 동네 책방 같은 작고 아담한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참에 창업일기 매거진을 하나 개설할까요...
그리고 참, 브런치에서 만난 인연은 제게 소중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