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
두루뭉술 나는 착하게 살고 있다고 착각했다. 요즘 이렇게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다들 하고 있단다.
다름을 인정하고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며 살았다. 결국 이건 나 자신을 위한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수개월 전에 씩씩대며 써놓은 글을 미발행 글로 남겨 두었다.
이유 없이(?) 나를 미워했던 사람들에게 소리 없는 반항심이 훅 일었던 시간이었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날 일도 더러 있었다. 비슷한 경우를 겪어 본 인생 선배는 ‘살아가며 그런 일은 수도 없이 더 겪을 거라’ 조언했다. 맘 단디 먹으라 했다.
“대체 왜?”라는 의문 대신 “어쩌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만든 표정이나 무심코 했던 말이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Do you wanna go out?”이라는 말은 “같이 나가자 / 너도 나갈래?” 같은 제안에 가깝다는 걸 알지 못하면, “너는/너도 나가고 싶어?”라고 오해할 소지가 다분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풀어보고 싶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의 별명은 동물의 형상을 한 캐릭터가 대부분이었다. 약간 돌출된 앞니와 축 처진 눈-눈물이 얼굴 양 옆으로 흘러내리는, 죽어도 로맨틱할 수 없는 그런 눈- 때문이다. 다람쥐나 토끼는 하트였고, 나무늘보나 비버는 괜찮았다. 고등학교 때는 두더지와 보노보노 급기야 마시마로라는 별명까지 얻었는데, 내 맘에는 탐탁지 않았으나 어쩌겠는가.
별명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부터 대학생이 되면서 동물이 아닌 다른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잘 웃는다 하여 붙은 ‘스마일(smile)’이 그것이었다. 그땐 내내 웃고 다녔나 보다. 지금도 잘 웃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간혹 “에린, 웃어~”라는 말을 듣는다. 거절하는 법을 몰라 얼굴에서 웃음기를 없앤 몇 번이 잦아진 모양이다.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때가 있었다. 나와 먼 얘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인정하기 싫었지만)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는 걸 조금 늦게 깨달았다.
요즘에는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 = 남에게 피해 주는 사람’이라는 공식이 생긴 듯하다. 한 술 더 떠 ‘호의 = 불필요한 오지랖’이라는 말도 종종 듣는다. ‘서운한 감정은 필요 이상의 마음을 준 나 때문이다.’라는 흔한 이별 공식과도 들어맞는다. “누가 해주랬어?라는 미운 말이 귓가에 콕콕 박히는 것만 같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우아하게 거절하는 법, 조금 이기적이어도 괜찮다 같은 책들은 세대가 바뀌고 나서야 빛을 보기 시작한 걸까. 나는 그런 걸 미처 배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꼭 배워야 아는 거냐고 한다면 할 말없지만)
직업군인인 아빠를 따라 전국 곳곳을 이사 다녔다. 초중고 합해서 전학 경력만도 어마어마하다. 전학을 다니는 와중에도 곧잘 감투를 썼다. 단, 단짝과 헤어지고 눈물 콧물 짜내며 이별을 하고 손편지로 소식을 전하다 끊기고 마는 헤어짐에 대한 기억이 많다. 그때부터 마음을 조금만 떼어주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82년생 김지영과 비슷한 시기의 여자 사람이다. 허나, 남녀차별을 당한 기억은 별로 없다. (그런 부분에서 무뎌서이거나 이미 익숙해져서일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종종 부당한 것들을 겪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나이 지긋하신 남자 부장 선생님의 “더 나이 들기 전에 아이 가질 생각을 해야지?” 같은 말도 안 되는 말 말이다.
그래서 나는 점점 웃음을 잃었던 것 같다는 말을 하는 거다.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아침 출근길에 해놓고는 오후에는 “나는 이런 컴퓨터 프로그램을 잘 다룰 줄 모르니 좀 도와줘.”같은 말을 했다가, 퇴근할 때는 다 큰 대학생 된 자식 자랑을 하여 ‘그럼 왜 자식한테 부탁하지 않지?’라는 의문을 만들게 하는 그런 말들 말이다.
어떠한 이유로 인해 나는 잘 맞서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어른인데 더 큰 어른이 되겠다고 연습 중이다.
간혹 거절의 의사를 내비칠 때면 얼굴이 빨개진다. 부당한 것에 건의할 때는 눈동자가 흔들린다. 사람들의 말도 안 되는 부탁 같은 것에 정중히 거절하는 법을 아직도 알지 못한다.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면 한 뼘은 더 자라야 할 것만 같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생각했다가 다치고만다. 사소한 그런 일들은 결국 상대방을 다치게 할 수도 있는 줄 잘 알지 못했다. ‘배려’를 앞세우다 오히려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을 것만 같다는 말이다.
멀리 돌아서야 이제야 원점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이렇게 하는 사과는 무효시켜야 마땅하겠다. 상처 입고 상처 주는 삶의 궤적에서 나라는 점하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지라도. 그럼에도 나는 속죄와 변명과 다짐을 한꺼번에 해본다.
어렵다. 나를 드러내는 건. 받아들이고, 설명하는 건.
세 단락 전에 끝냈어야 할 글이 길어지고 있는 것처럼. 이런 사족이 결국 필요 없다는 걸 깨달았지만 정작 지워버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시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