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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Aug 14. 2020

미국 서브웨이 인종차별(?) 썰

아무튼, 서브웨이


#1


"15센티 터키(turkey) 두 개에 둘 다 아보카도 추가요. 빵은 허니 오트, 아메리칸 치즈로 구워주시고요. 야채는 양파 빼고 다 넣어주시고, 소스는 랜치랑 그냥 머스터드 조금씩만요."


- "네. 그런데 15센티 똑같은 거 두 개 하시나요? 그럼 30센티 하나로 주문하는 게 더 저렴할 텐데요."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아, 그런데 할라피뇨만 한쪽에 조금 더 넣어주세요."


- "한쪽에만 더 넣으면 같은 샌드위치가 아니라서 두 개 가격으로 내셔야 해요."


"네? 할라피뇨 몇 조각 더 넣는걸로요? (잠시 당황) 그럼 둘 다 조금씩 더 넣어주세요."

라고 말하고 보니, 그녀는 할라피뇨를 한 움큼 집어서 샌드위치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응?


"아, 아니,, 너무 많은데요? 조금만 더 넣어달라고 했는데..."


- "너무 많다고요? 그럼 빼면 되는 거죠?"

라고 말한 그녀는 이번에는 그 한 움큼의 할라피뇨를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더라.


집 근처에 서브웨이 A가 있어 자주 가곤 했었는데, 서브웨이 B가 하나 더 오픈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날이었다. 기분이 나쁠락 말락 묘했던 그 순간 문득, 오래전 뉴욕의 어느 서브웨이에서 겪었던 할라피뇨 사건이 떠올랐다.








#2


내 친구, 주경이랑 영어 공부와 여행을 겸하려 미국으로 떠나 있을 때였다. 약 10년 전이다.

워싱턴(Washington D.C.)에 살고 계신 이모 댁에서 머물다가 막 뉴저지로 숙소를 옮겼을 즈음이었을 거다. 뉴욕에서는 숙소를 구할 엄두조차 내지 않았고, 어차피 메트로(metro) 이동이 쉽기 때문에 문제 될 건 없었다. 뉴저지 렌트하우스는 셰어(share) 형식의 2층 집이라 요리도 가능하긴 했지만 그때 우리는 대부분의 식사를 샌드위치로 때우곤 했던 것 같다. 널린 게 카페테리아고, 샌드위치 집이었으니까.


그날도 우리는 뉴욕의 어느 흔한 서브웨이에 들어갔고, 주문을 했고, 매콤한 맛을 좋아했던 주경이는 할라피뇨를 조금 더 달라고 말했다.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 가게의 분위기와 직원이 풍기던 뉘앙스가 그려진다. 그는 커다란 손으로 할라피뇨 한 움큼을 집어 주경이의 샌드위치에 푹 눌러 박았다. 할라피뇨가 산만큼 쌓여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그가 유색인종이었던 걸 분명히 기억한다. 이 기억의 단면이 또 다른 차별이 될지는 모르겠다.



당황한 우리는 그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집으로 오는 길에, "우리 인종 차별 당한 거니?" 라며 웃고 말았고, 아직도 종종 그 이야기를 하면서 흑백사진 같은 추억을 떠올릴 뿐이다. 드라마틱한 말다툼이나 상처 같은 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조금 어렸던 우리는 경험치 1을 더한 것으로 충분했다.







#3


동네 서브웨이 B에서 겪은 할라피뇨 왕창의 기억 이후, 나는 다시 서브웨이 A만 찾는다. (유치하지만 B와는 등을 돌렸다.) 엊그제 저녁이었다. 여느 때처럼 내 선호도에 맞는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빠른 주문 때문이었는지, 빵을 구운 이후부터 직원은 내 앞사람(남자)의 샌드위치와 동시에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 (그를 보며) "야채 다 넣어 드려요?"

- (나를 보며) "야채 다 넣어 드려요?"


보통 나는 직원이 야채 넣는 양을 보다가 마지막 즈음에 할라피뇨를 더 넣을지 말지를 정하곤 하는데 (이놈의 할라피뇨, 서브웨이 할라피뇨는 왜 이렇게 맛있어가지고), 내 앞의 그가 먼저 "할라피뇨는 조금 더 넣어주세요." 하는 게 아닌가!


(남자를 힐끗 바라본 후) "저도 할라피뇨 약간만 더 넣어주세요."


그때였다. 내 뒤에서 주문하던 남자 역시 "할라피뇨는 좀 더 넣어 주세요."라고 주문을 마친 순간.

'으응? 할라피뇨 대잔치?'


어쩌면 '할라피뇨 조금만 더 주세요.'의 주문은 서브웨이 직원들에게 당연한 일 혹은, 짜증 나는 일 -'너도 그럴 줄 알았어.'수준의 -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피식 웃음이 나버렸다.






서브웨이 B직원은 그 날 아침에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저 '그래, 너 할라피뇨 많이 먹어.'라고 한 움큼 준 것뿐일 수도, 뉴욕의 그 직원은 '넌 동양인이니까 그래 매운 거 좋아하지?'라고 생각한 것뿐일 수도 있겠다는 거다. 물론, 지금 뉴욕에서 같은 일을 당한다면 '너의 이 행동은 인종차별일 수 있어.' 라고 분명히 말은 해보겠지만, 되돌아올 답은 뻔하다. : ‘아닌데? 네가 달래서 준 건데?'


.


아무튼, 서브웨이는 맛있으니 되었다.


“여러분도 혹시 할라피뇨 조금 더 넣어 드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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