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평

소외된 먹물들의 아픈 이야기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소설집

by Erin Chon

권여선의 소설에 내가 이토록 강하게 반응하는 것은, 그녀와 내가 동시대의 감수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나도 그리고 그녀도 영락없는 386세대이다. 이미 기성세대의 도를 넘어 온갖 적폐의 온상이 돼버린 꼰대 세대.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꼴불견으로 생각하는 게 386 무용담이라고 한다. 졸업만 하면 대기업에서 모셔가고, 집만 사면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던 때, 치열했던 민주화 항쟁 때의 희생조차 정치 기반이 되어 정계에서 굵직하게 보상받게 된 그 억세게 재수 좋은 꼰대들의 무용담이 몸서리쳐지게 싫은 건 그들만이 아니다. 나도 그렇다. 386이라고 해서 전부 다 그렇게 억세게 재수가 좋은 건 아니다. 그 와중에도 자의반 타의반 열외로 밀리기 시작해 결국 대박 행렬에서 제외된 억세게 재수 없는(?) 사람들도 있으며, 어차피 시대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자기 스스로 구축한 세계 속에서 행/불행을 곱씹으며 사느라 고속성장의 대열에 끼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물론 대학 진학률이 20%가 채 안되었던 터라 대학 나온 그들만의 리그에 끼지 못한 80%들도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은 386세대이지만 술이 필요한, 정말이지 꼭 필요하겠다 싶은 이들이다. 이 주정뱅이들의 사연은 ‘고통’이라는 말 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 그 ‘고통’들이 문학적으로 승화되어 차라리 아름다운 예술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작가는 그 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고통의 근원은 결핍이다. 그것이 돈이든 애정이든 건강이든 아니면 그 어떤 것이든지 간에 결핍은 결국 고통이 된다. 결핍에서 오는 고통은 그 결핍이 충족되지 않는 한 치유될 수 없다. 권여선의 소설 속 주정뱅이들은 끊임없이 술을 마셔댄다. 그러나, 마치 돈의 결핍을 애정으로 채울 수 없고, 건강의 결핍을 돈으로 채울 수 없듯이, 그들의 결핍도 술로 채워지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고통’을 견딜 뿐이다. ‘그니깐, 인간사 결핍은 하나님으로 채워야지 왜 술로 채워? 하나님 안 믿으면 다 그렇게 소망이 없는 거여.’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함부로 말을 내뱉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 다만, 우리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그 근원에 존재하는 결핍의 문제 앞에서 겸손히 ‘신’을 떠올리는 이들에게는 이 주정뱅이들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라고 귀띔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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