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이별의 모든 과정이, 보다 나은 인간으로 만든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절대 뒤돌아 보지 않는다. 혹시라도 마음 다치는 일이 있을까봐, 얼굴을 돌린, 혹은 냉정하게 뒤돌아 선 그 뒷모습을 아직은 마주 대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러나 내가 등을 돌리려던 그 찰나에라도 상대방의 시선이 느껴질 때면 반드시 뒤돌아서 그 사람이 자리를 뜰 때까지 손을 흔들고는 한다. 인정(人情)이라는 것이 이러한 상호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리라.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관계를 일반화할 순 없지만 이런 원형과 순환 속에서 되풀이 된다, 적어도 나의 만남과 관계에선.
타자의 언어는 언제나 모호하고 타자적 세계는 미지(微旨)로 가득 차 있으며, 나는 반복적으로 미끄러짐을 경험하곤 한다. 가닿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는 관계란 사람을 얼마나 서늘하고 고독하게 만드는지. 때문에 '일방향적인' 관계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만이 지속적으로 헌신하는 관계는 얼마나 무의미하고 부조리한가. 거기에선 사실 '관계(關係)'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관계'는 심정적으로 접속어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받을 가능성이 있는 존재다. '환대'라는 것은 두 팔 벌려 맞아줌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등 돌린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거나 타인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봐 줄 수 있는 용기다. 관계란 상호적이지만, 사랑이 모든 것을 무화하듯, 환대 역시 비대칭적이다. 그것은 실천과 윤리의 또다른 이름이므로.
여전히 관계에 좌절하고 잦은 피로감을 느끼지만, 관계맺기를 그만 둘 수 없는 이유. 시행착오는 줄지 않고 매번 실수를 반복하고 상처투성이가 되지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 우리는 매일 다치면서 자라고, 견디면서 배우기 때문이다.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도 우리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