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과거로부터 몇 발자국을 더 걸었을까
나는 내 자신에 대해 글로 쓸 수 없다. 그렇다면 자신에 대해 글을 쓸지도 모르는 이 나는 누구일까? 글쓰기 안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글쓰기는 그를 움직이게 하며, 쓸모없게 만들 것이다. 그리하여 점진적인 하락이 일어나고 그 사람의 이미지마저도 거기에 차츰차츰 연류되어(무엇인가에 대해 쓴다는 것은 곧 그것을 시대에 뒤지게 하는 것이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라는 혐오감 어린 결론만을 낳게 한다.
이렇듯 사랑의 글쓰기를 봉쇄하는 것은 표현성에 대한 환상이다. 작가인 나, 또는 그렇다고 생각하는 나는 언어의 효과에 대해 계속 잘못 생각한다. 나는 '고통'이란 말이 어떤 고통도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따라서 그 그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전달하지 않는다는 것을, 더 나아가 짜증나게 하리라는 것을(우스꽝스럽다고까지는 말하지 않더라고)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내게 자신의 '진지함'을 매장하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어야만 한다(언제나처럼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는 오르페의 신화를 상기할 것).
글쓰기가 요구하는 것, 그리고 모든 연인이 아픔 없이는 동의할 수 없는 것은 그의 상상적인 것을 조금 희생해야 한다는, 그렇게 함으로써만 그의 언어를 통해 약간의 현실적인 것의 승화를 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란 기껏해야 상상적인 것에 대한 글쓰기이며, 또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글쓰기에 대한 상상을 포기해야만 한다. 즉 언어가 작업하는 대로 자신을 내버려두며, 사랑하는 사람과 그의 그 사람이라는 이중의 이미지에 언어가 틀림없이 부과하게 될 부당함을(모욕을) 감수해야만 한다.
-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중
가끔 걸어온 발자국을 보려고 등 돌려 설 때가 있다. 대게 그 자취들은 내가 쓴 글이지만, 글이라서 다행이다. 내가 뱉은 '말'들은 더 이상 주워 담을 수 없지만, 혼자 주절댄 글들은 언제라도 고쳐 쓸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는 쓸 수 없게 돼버린 감성의 글들과 별안간 그 시절의 처연함을 소환하는 문장들에 새삼 복잡해진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울 때도 생기지만, 그래도 지나온 자취를 뒤돌아보는 것은 자신이 과거로부터 몇 발자국 걸어왔는지를 가늠해 보기에 좋은 지표가 된다.
최근 몇 년 사이, 몇몇의 인간관계를 매듭 지은 후 나의 글쓰기는 완전히 퇴보하였다.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자책한 빈도만큼 관계에 대한 회의가 커진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신념처럼 고수해온 인간관계에 대한 태도와 방향 중의 하나는, 한 번 맺은 사람과의 인연을 내 쪽에서 먼저 끊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현시점에서 유지되는 관계들에 대해 선택과 집중도가 높다는 점. 그런저런 이유로 시간이 더 많이 생긴다고 새로운 사람들을 두루 만나기보다 좋아하고 편한 사람들을 더 자주 만나왔던 것이다.
그러다 지난 몇 년 사이, 주변에서 일어난 예기치 못한 사건과 신변들은 조금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사람에 대한 신뢰를 조금 잃기도 했지만, 관계에 대하여 회의감과 냉소가 생겨버린 것이다.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 그것이 정신적인 외상으로 작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글을 쓸 때에는 자기 검열이 더욱 심해져 버린 것이다.
글쓰기에서마저 자신을 설명하거나 변호하고 있다는 사실에 완전히 환멸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쓰는 것을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입장과 생각, 혹은 여타의 정황들에 대해 말하기보다,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먹었으며 어디를 다녀왔다는 식으로 매우 단편적이고 즉물적인 사실만을 쓸 수 있을 뿐이었다는 것. 결국 실어증에 걸린 사람마냥 속엣말을 뱉어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 입을 닫아 버린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을 지키는 것이 우선시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말과 행동의 진위를 따지기 전에, 말하는 태도부터 지적받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다. 입 없는 말들과 소리 없는 비난에 무의식적인 공포가 생겨난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자신에게 관대하기란 더욱 생소하고 낯선 감각인 까닭에 부단히 노력하거나 의식하지 않으면 한 발 앞으로 내디딜 수 없다. 이 빌어먹을 강박과 깊이를 모르는 죄의식!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태연자약했던 저 시절의 내 모습이 애처롭고 신기하다. 얼마나 많은 어휘를 익혀야 비로서 타인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지.
내 공포심의 정체는 표정 없는 얼굴들. 마주 대한 그들을 나를 두렵고 떨리게 만들어도 뒷걸음질 치기보다 뻔뻔하고 염치 따윈 모르는 사람처럼, 한 발짝 앞으로 내딛어가는 사람이고 싶다. 내게 등 돌린 사람들을 향해 의연히 웃을 수 있는 너그럽고 용감한 인간, 그런 내면 없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