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게으르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바지런하다’는 칭찬을 들으며 늦잠 한 번 제대로 자본 적 없는 삶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상하게 아침을 여는 일이 힘겨워졌다. 세수를 하고 정신을 깨워보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눅눅한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내 열정이 식은 걸까?’ 하는 자책 속에 변화를 갈망하던 어느 날, 한 온라인서점 장바구니에 묵혀두었던 어느 스님이 쓴 책 한 권이 눈에 띄어 다른 책들과 같이 주문했다.
평소 나는 역사나 철학 같은 무거운 책들로 지적 허세를 부리곤 했다. 하지만 주문한 그 책을 펼치고 읽어 내려가자 "청소는 동(動)의 수행"이라는 스님의 소박한 문장이 마음을 건드렸다. 깨끗한 절간의 바닥이 사실은 스님들의 수행으로 여기는 ‘청소’를 하루도 빠짐없이 해낸 결과라는 것, 그리고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도 하루 5분이면 자신만의 수행을 할 수 있다는 조언에 나는 홀린 듯 끈끈이 스티커가 붙어있는 청소 롤러를 손에 쥐었다.
나의 수행은 이불을 개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불을 펴고 접는 그 단순한 동작이 몸의 엔진을 깨우는 예열이 된다. 아직 어스름한 거실의 불을 켜고 커튼을 젖힌다. 베란다 문을 열어 겨울의 날 선 공기를 방 안으로 들여보내면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든다.
침대 맡의 짧은 롤러로 베개와 시트를 문지른다. 분명 어제도 치웠건만 롤러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머리카락과 먼저들이 소리 없이 달라붙는다. 신기하면서도 무서운 일이다. 우리 마음의 잡념도 이 먼지처럼 매일 밤 나도 모르게 쌓이는 것 아닐까.
이젠 손잡이가 긴 롤러로 바꿔 들고 안방부터 거실까지 바닥을 훑는다. 그동안 두세 장의 끈끈이 종이를 떼어내 쓰레기통에 버리면 이것이 곧 어제 묵은 감정을 폐기하는 의식처럼 경건하려 의식한다. 스님들의 수행인 것처럼. 채 5분이 걸리지 않는 이 과정이 때론 귀찮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 말한다.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잠을 자듯, 아침이면 나를 닦는 거라고.
청소를 마치고 샤워까지 끝내고 나면 신기하게도 몸 안에 에너지가 차오른다. “청소는 내 자신이 여유 있다는 증거”라던 스님의 말에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수선한 방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용기, 그리고 그것을 내 손으로 직접 치워내는 바지런함. 그 작은 성취가 모여 나의 하루를 ‘기분 좋은 예감’으로 채우며 오늘도 나는 롤러를 들고 나만의 작은 절간을 정성껏 닦아낸다. 5분이면 족하므로.
*인용된 책: [스님의 청소법] 마스노 슌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