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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 Taeeun Kim Jun 02. 2016

[짧은생각] 흉기화 돼가는 아파트

아파트가 뭐기에, 그렇게 아파트를 못 지어들 안달일까. 누대에 걸친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 역사를 밀어내고 아파트에 살기를 소원한다. 심지어 농촌지역에도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렇게 아파트가 주거양식으로 선호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강남아파트 가격 상승의 영향일까, 아파트에 사는 것이 문화적이고 편리하다는 생각이 더욱 널리 퍼진 것 같다. 관리비를 내고 관리를 받는다는 측면에서 편한 점이 있겠지만 시각적·환경적 공해를 야기하는 아파트단지가 과연 고급 주거양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전 국토의 아파트화가 이뤄지며 보존가치가 있는 건물들과 골목들이 사라지는 것이 보편화됐다. 비단 종로구 무악동 옥바라지골목뿐이 아니다. 경기도 하남 미사보금자리 재개발사업으로 180년 역사를 품고 있는 구산성당이 철거된다. 건물은 1979년 지어졌다고 해도 이런 외곽지역까지 택지개발촉진법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 의아스럽다. 인구가 점점 줄면서 위성도시가 유령도시화돼가는 이웃 일본의 사례를 봐도 그렇다. 일본과 사회구조가 비슷하면서 20~30년 정도 뒤진 우리나라로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케이스인데, 그 정도도 내다보지 못하는 시책이 답답하다. 외국도시에서도 오래된 아파트단지는 대개 슬럼화 되기 마련인데 당장 건설사들의 이익 문제가 걸린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20151223 폐허가 된 옥바라지골목 뒤로 보이는 아파트단지

예술의 도시로 알려진 경남 통영시에서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소반 장인 추용오 씨의 도남동 공방이 강제철거돼 시끄럽다. 역시 소반 장인이었던 선대부터 사용하던 공방이라고 한다. 도로개설을 위해서라는데, 공방으로 사용되던 120년 된 고택뿐 아니라 연접한 세계적 음악가인 고 윤이상의 생가터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역시 개발우선주의가 낳은 대한민국의 폭력적 일면이다.      


전체 가구의 반 정도가 아파트에 살다 보니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도 비례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온갖 흉흉한 뉴스를 들으며 아파트 자체가 흉기화 돼가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우선 아파트가 자살 장소로 애용되고 있는 것이 무섭다. 아파트에 산다면 충동적으로 죽음을 선택할 가능성도 높다. 점점 고층화되면서 뛰어내리면 즉사할 수밖에 없다. 다른 준비를 하며 숙고할 새도 없이 즉흥적 자기살해가 가능하다. 부부싸움하다가 분에 못 이겨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는 보도도 가끔 보인다.      


지난달 31일 공무원시험 준비 중이던 대학생이 아파트 20층에서 투신하면서 지나가던 40대 공무원을 덮쳐 함께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 공무원이 영화 ‘곡성’ 개봉에 맞춰 촬영지인 곡성군을 홍보하느라 밤늦게 퇴근하던 중이라니 더욱 기가 막히다. 공동 주거지에서의 투신자살이 불러온 참극이다. 지난해에는 ‘캣맘 사망사건’도 있었다. 아파트 화단에서 길고양이 집을 짓던 50대 여성이 초등학생이 장난으로 던진 벽돌에 맞아 사망한 것이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유사 사건이 또 보도됐다. 철없는 아이들에게 아파트 자체가 위험한 놀이터가 되고 있는 양상이다.      

20151027 북촌에 위치한 서울한옥지원센터. 민간에 임대해 한옥 게스트하우스로 쓰이던 것을 용도변경했다. 

층간소음 살인사건은 또 어떤가. 아파트의 구조적 문제를 교육과 중재로 예방·해결해보겠다는 발상도 답답할 따름이다. 입주민의 하대로 인한 경비원의 분신자살이나 폭력사태, 난방비 0원 사건, 승강기 사고, 관리비 관련 비리 등 아파트와 관련한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데도 아파트를 향한 욕망의 질주는 멈출 줄을 모른다. 우리의 도시 미관에 대한 감각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후졌다.      


지난해 말 서울한옥지원센터에서 만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과 교수는 아파트 생활이 불행을 야기한다고 짚었다. 노르웨이에서 아파트는 비인기 주거양식으로 대부분 돈이 없는 이민자들이나 연금생활자인 노인들이 거주한다고 전했다. “전망이 좋은 것이 아이들의 정서교육, 심성안정화에 도움이 된다”며 “아파트의 대량생산적 획일성이 창조성을 죽인다”고 지적했다. 또 “서울은 문화적 가치, 공익적 가치보다 이윤추구의 수단으로써 공간을 본다”며 “서울만큼 공간의 계급화가 강하게 느껴지는 도시는 없다”고 꼬집었다. 60~70년대 조국근대화사업이 낳은 거대한 아파트 단지에 신흥중산층이 입주하면서 근대화된 생활상을 상징하게 됐다는 것이다. 구 소련 출신인 그는 아파트가 과거 공산국가에서 건설비용을 줄이기 위해 지어졌다며 주민통제에는 용이하지만 집단생활이 주민 간의 갈등, 범죄율, 정신질환율을 상승시킨다는 점을 강조했다.      

20150915 건축가 김원의 옥인동 자택

동석한 원로 건축가 김원도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하는 데는 인성에 맞지 않은 주거공간의 문제도 있다”고 동의했다. “아파트가 주는 밀폐감에 어른들은 정신병에 걸리고 어린이들의 정서도 훼손된다”는 것이다. 96년 호주국립대 교수 개번 머코맥이 인공구조물의 밀도가 가장 높은 일본을 토건국가로 규정했지만,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국내 시멘트 소비량이 일본의 2배가량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일본보다 인구와 국민총생산(GNP)이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 심각성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학군 따라 반포 아파트에 ‘구겨’ 살던 김원 건축가는 옥인동으로 ‘탈출’한 지 오래다. 그는 현재 사는 집터가 ‘인왕제색도’로 유명한 겸재 정선이 살던 인곡정사의 뒷마당 자리쯤이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정원은 전통조경의 대가 고 김춘옥의 말년작이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층이 땅콩주택, 협소주택 등 대안적 주거공간을 만들어가는 데 주목했다.      


세계적 문화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81년 방한 당시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자랑하자 “소름 끼친다”, “한강이 불쌍하다”는 평을 남겼다는 일화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외국인들에게 이 아파트가 빈민가가 아니라 최고 부촌이라고 하면 놀란다는 얘기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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