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언제나 하나
군의관으로 복무할 때의 이야기다. 병사가 한 명 왔는데 병사를 데리고 온 간부가 미리 말해주기로는 복무 의지가 부족하고 매사 성의가 없는 친구였다. 작업을 나가서 틈만 나면 졸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게 멍하게 있는 때가 많다고 했다. 이런 모습이 계속되면서 동료들에게 원성을 사고 급기야는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함께 생활하는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다. 무기력함에 더해, 이제 다른 사람들의 뒷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불안해했다. 조금만 더 자신의 행동에 신경을 쓰고 빠릿빠릿하게 행동을 하면 모두 나서서 도움을 줄 수 있으련만, 그것이 되지 않아서 부대에서도 애로사항이 많다는 것이 간부의 이야기였다. 배경 설명이 길었는데, 그래서 이 친구는 ‘우울증’ 의심 하에 군 병원에 진료를 보러 오게 된 것이었다.
본인을 직접 진료하니 간부의 이야기대로였다. 다만 복무 의지와 관련한 부분에 있어서는 본인의 이야기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긴장이 저절로 풀린다는 것이 병사의 이야기였다. 간부들도 동료들도 자신을 복무 의지가 떨어지고 다른 사람에게 폐만 끼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군 생활을 잘 해서 인정받고 무사히 만기 전역을 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런데 이번 진료에는 병력 청취 상의 불일치 말고도 한 가지 특이한 사항이 더 있었다. 이 병사와 간부는 백령도에서 전날 배를 타고 나와 진료를 보러 온 상태였다. 백령도에서 인천까지 배를 타고 다섯 시간, 다시 내가 있는 병원까지 한 시간 반. 돌아가는 배편이 정해져 있어 진료를 반드시 그 전에 끝내야 했다. 다음 진료 예약이나 검사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혼란스러웠다. 초진으로 모든 것을 파악하고 계획을 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급해져서 차분하게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다. 병력을 물어보아도 크게 짚이는 것이 없었다. 기분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충분히 의욕적이었다. 집중력의 문제인가? 낮은 가능성이기는 하지만 머릿속 생각과 외부의 경계가 무너지는, 그래서 자신의 의지를 조절할 수 없는 조현병과 같은 상태는 아닌가? 애초에 정신과에서 진료하는 질환이 맞기는 할까? 뇌 영상 촬영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하다못해 이전 혈액검사 결과라도 있었다면 진단을 좁혀나가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병사는 모든 진료과를 통틀어 입대 후 첫 진료를 나에게 보고 있었다.
자동차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부대에서 복무하는 병사였다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환들이 맞는지 아닌지 감별할 수 있는 검사들을 처방했을 것이다. 확실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진료과 동료들의 조언도 구할 수 있다. 그것이 표준적인 진료이다. 일 주일 간격으로 두어 번만 더 외래에 올 수 있으면 충분했다. 그러나 내원한 간부와 병사의 복무 환경, 내게 주어진 진료 환경은 극단적이었다. 이 친구의 다음 내원까지는 3개월도 더 걸릴지도 모른다. 석 달이면 증상이 악화되기에 충분한 기간이다. 더욱이 군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용이한 물품이 너무도 많다. 24시간 동료들과 함께 생활하는 환경에서 병영 갈등, 따돌림은 자살 시도의 가장 흔한 원인이다.
머릿속 한편에서는 또 다른 생각이 든다. 의사가 환자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다. 현실적 제약이 있을 때는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초진에, 검사도 없이 환자의 문제를 밝힌다는 것이 가능이나 한가. 어느 모로 보아도 내 능력을 벗어난 일이다. 섣부르게 진단하고 약을 처방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오히려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좋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진료실 바깥에는 대기 환자가 늘고, 배편 때문에 환자가 떠나야 하는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압박감은 아무리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해결의 실마리는 뜻하지 않게 등장했다. 병력 청취가 끝나고 나서, 내가 물어본 것 이외에 지금 겪고 있는 문제와 관련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내용이 있는지 묻자 병사는 언제인가부터 크게 웃으면 턱에 힘이 풀리는데 이것이 지금 문제와 관련이 있겠는지 진지한 얼굴로 물어왔다.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아서 참아 왔다고.
교과서적인 탈력 발작(cataplexy)이었다. 기면병에 대표적으로 동반되는 증상이다. 병사와 간부에게 들었던 내용들, 맥락에 잡히지 않고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내용들이 퍼즐조각 맞춰지듯 맞춰졌다. 무기력하고 자꾸 잠들어 버리는 것은 기면병에서의 발작적인 수면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잠들어 버리곤 했으니 본인은 답답했을 것이고 주변에서는 복무 의지가 없고 무성의한 것으로 보았을 터이다. 당장 필요한 것은 수면다원검사였다. 군 병원에는 검사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소견서를 작성하고 외부 병원으로 검사를 위탁했다.
한 달 정도가 지난 뒤에 확인을 해 보니 검사를 통해 기면병으로 확진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현역 복무에 적합하지 않아 심사를 통해 전역할 수 있는 조건이었지만 병사 본인은 만기 전역을 희망해 군에 남았다. 질병으로 인한 문제가 있었음이 알려진 뒤에는 다른 사람들과의 문제도 모두 사라졌다고 했다. 주간에 위험할 수 있는 일과에서는 열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동료들도 기꺼운 마음으로 환자를 배려해 주었고 뒷담화를 걱정하는 일도 없게 되었다. 무엇보다 의지가 부족하다는 손가락질을 더 이상 받지 않게 되었다.
해피엔딩으로 끝났고 뿌듯하게 감사의 인사도 들었지만 사실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해냈다는 보람보다는, 자칫하면 놓칠 수 있었다는 생각으로 마음 한켠이 서늘했다. 섣부르게 진단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마지막에 더 해 줄 이야기가 있는지 묻지 않았더라면, 혹은 검사만 처방하고 돌려보내 문제가 지속되었더라면. 소아과 전문의인 친구가 예방접종을 할 무렵이 되면 종일 가슴이 답답하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백신의 부작용은 예상이 불가능한 것인데, 자신이 처방하고 주사한 아이에게 혹시나 이상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진료 경험을 떠올릴 때면 항상 뿌듯함이나 보람보다는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기고 있다는 생각, 부족함에 대한 반성, 앞으로의 진료에 대한 긴장과 두려움이 먼저 느껴진다. 언제쯤 편안한 마음으로 진료를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