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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기린 Mar 25. 2022

격리실, 그 고민스러움에 대하여

- 내가 힘은 없어도 가오는 있다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때는 언제일까? 다양한 순간들이 있다. 새벽 당직 때 병동 환자가 옷에 들어 있는 고무줄 끈을 이용해 자살 시도를 해서 의식이 약하다는 연락을 받았던 때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나이트 근무 간호사는 이런 일을 막기 위해 밤 사이 여러 차례 병동과 환자들의 안전 상태를 체크하는데, 하필 순회와 순회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빠른 조치를 통해 다행히 환자의 생명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연락을 받고 이동하는 동안 휩싸여 있던 공포감이 지금도 생생하다. 오랫동안 진료하던 환자의 자살 시도 소식을 접했던 때도 있다. 무척 걱정스럽고 두려웠다. 누군가와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은 책임이 있다는 것이고 큰 두려움을 동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들이 다가올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었다면, 이와는 달리 공포감이 피부에 직접 와 닿는 일이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한여름이었다. 보호병동에 새로이 환자가 입원하게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중소규모 병원에서 전원되어 오는 환자였는데, 해당 병원에도 보호병동이 있기는 하지만 환자를 관리할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병상이 부족해서 전원되어 오는 경우는 많이 보았는데 관리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환자를 대면하고 이전 병원에서의 진료 기록을 받아본 나는 왜 환자 관리가 불가능하다고 했는지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환자는 안정제를 투여 받고 잠든 상태였는데 한 눈에 보아도 거구였다. 살집이 있어서 체구가 큰 사람이 아니라 운동을 많이 한 사람이었다. 나중에 측정해 보니 키는 190cm가 넘었고 몸무게도 100kg에 달했었다. 여기에 진단명은 양극성 장애 1형. 환자의 폭력성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 분명했다.


환자는 26세 남성으로 격투기 체육관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함께 내원한 어머니의 이야기에 따르면 평소에는 체구와는 정반대로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한다. 겉모습과 지금의 상태만 보고는 내가 믿지 못할 것 같다며 함께 일하는 체육관 관장님에게 전화를 연결해 주었다. 성실하게 일하고 운동하는, 폭력성과는 전혀 거리가 먼 친구라는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환자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개월 정도 전부터였다. 운동 때문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 패턴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자지 않기 시작했다고 한다. 운동 용품 사는 것을 제외하고는 소비도 크지 않던 사람이 화려한 옷과 장신구를 사고 치장도 하기 시작했다. 목소리도 커지고 조금씩 짜증스러워졌다. 가족들이 달라진 모습을 걱정하면 벌컥 화를 냈다. 출근도 제 시간에 하지 않았고 평소 깍듯하게 대하던 관장님의 이야기에도 자칫하면 달라들 것 같은 기색이었다.


문제가 벌어진 것은 2주 정도 전이었다. 행동을 지적하는 아버지의 말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집안 물건들을 모두 때려부순 것이다. 가족들은 확실히 평소의 아들이 아니고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고 119에 신고했다. 출동한 119에서 도움을 주어 어찌저찌 정신과 병원에 내원, 양극성 장애라는 소견을 듣고 입원을 하게 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환자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씨발. 여기가 어디야? 너 이 개새끼야, 너는 뭐 하는 놈이야?”가 환자가 내게 건넨 첫 마디였다. 조증 삽화가 있을 때 사람은 마치 머릿속에 불이 난 것과 같다. 에너지가 증가하고, 말이 많아진다. 수면과 휴식이 줄고,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계획과 생각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상태에서의 행동 양상은 매우 다양하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돈을 써 버리기도 하고, 성적으로 매우 문란해지는 경우도 있다. 지금의 환자와 같이 짜증이 늘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건드리기만 해도 터지는 폭탄 같은 상태가 되기도 한다. 심한 경우에는 입원을 통해 평소의 환경으로부터 격리해 환자의 행동이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것을 방지하고 약물치료를 통해 머릿속의 불을 꺼야만 한다.


환자는 입원 첫 보름을 안정실에서 보냈다. 접근하려고 하는 모든 사람에게 욕설을 하고 공격하려 했기 때문이다. 환자와 면담을 할 때는 주치의인 나, 담당 간호사, 보호사, 병동 보안요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어야 했다. 하루 두 번 이상 입원과 치료의 이유,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조증으로 인해 공격성이 지나친 상태인 까닭에 입원, 격리되어 있지만 자신이 질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환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너무도 짜증스럽고 답답하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일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다섯 마디 이상의 말을 주고받는 동안 욕설을, 화를 참을 수 있게 되면 안정실을 벗어나 병동 생활을 하자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데 2주일이 넘게 걸렸다.


안정실 격리 해제를 두고 치료진 사이에 갑론을박이 있었다. 면담을 할 때에 욕설을 참을 수 있게 된 것, 화를 덜 내게 된 것은 분명 치료적 진전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안정실을 나서는 순간부터 치료진 모두가 환자가 돌발적인 행동을 했을 때 위험에 노출된다. 호전 추세를 조금 더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격리 해제를 결정했다. 환자는 이유도 모른 채 – 이유를 계속해서 설명했지만 환자는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 보름을 방 안에 사실상 갇혀 있었다. 약물의 치료적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점이 되었고 증상도 호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증상은 호전 추세를 보일 것이 틀림없다. 폭력성을 보이는 때에는 격리되어 있는 것이 옳다. 그러나 호전을 보이기 시작했는데도 안정실에 있는 기간을 늘리는 것은 혹시 나와 치료진의 편의를 위한 것은 아닌가? 환자를 환자가 아니라 관리되어야 할 위험한 존재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환자는 병동 생활을 시작했다. 감정이 올라오려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지만 위험한 정도는 아니었다. 꾸준히 복약했고 증상은 점차로 안정되어 가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조금씩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격리 해제 4일째, 다른 환자를 면담하고 나오는 길에 병동 복도 한 구석에서 담당 간호사가 환자에게 위협당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네가 뭐나 된다고 자꾸 귀찮게 하는 거야. 너 한번 맞아 볼래? 내가 우습냐?” 자신보다 두 배는 몸집이 더 커 보이는 환자에게 위협당하는 간호사의 표정은 당연히 겁에 질려 있었다. 그리고 나는 후회했다. 내 안일한 결정이 다른 치료진에게 위험한 상황을 만들었다. 하필 다른 사람들은 잠깐 자리를 비워서 병동에는 나와 해당 간호사뿐이었다.


몹시 두려웠지만 내가 초래한 상황에 대해 뒷짐만 지고 있을 수 없었다. 결정의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나였고, 따라서 책임도 나에게 있었다. 환자에게 지금의 상황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며 개입했고 공격의 화살은 나에게 돌아왔다. 그로부터 5분 정도는 정말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시간이었다. 거구의 환자는 이제 나를 벽에 몰고 위협을 가했다. 주먹으로, 무릎으로 내 머리 바로 옆의 벽을 치며 욕을 했다. ‘맞을 때 맞고 다치더라도 가오는 살아야 한다. 여기서 폭력적인 모습에 굴복했다가는 앞으로 이 환자의 치료는 물 건너간다. 절대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굳은 표정으로 환자를 대하고 있었다. 위기는 탈출한 간호사의 도움으로 해결되었다. 빠르게 비상벨을 눌렀고 다섯 명의 보안요원이 출동해 환자를 제압했다.


꾸준한 치료의 결과 사건이 있은 지 한 달 정도가 지날 무렵에는 안정적으로 병동에서 지낼 수 있었다. 함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환자의 위협적이던 모습은 다시 떠올리기 어려웠다. 우여곡절을 거쳐 환자는 입원 3개월만에 퇴원했다. 퇴원할 때 환자는 입원 초에 부모님들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정말로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모습이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보호병동에서 환자를 안정실에 격리하고 강박할 것을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지시는 철저히 의학적인 근거 하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법에 의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수행되고 엄격하게 기록, 관리된다. 병원에서 수련을 받는 전공의의 경우 지도 전문의의 확인을 거쳐야 함은 물론이다. 이렇게 2중, 3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었지만 폭력적이거나 행동 문제가 심각한 환자를 격리할 때면 늘 고민을 하게 된다.


나는 어떤 자격으로 이러한 지시를 내리고 있는가? 지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점차 익숙해지고 환자를 환자로 보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닐까? 환자가 질병으로 인해 판단 능력이 떨어졌을 때, 환자 본인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나의 판단이 동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을까? 환자의 자율과 치료 진행, 치료진의 안전 사이에서 정답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명쾌하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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