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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기린 May 27. 2022

내가 살다 살다 이런 노티를 받을 줄은

- 정신건강의학과 입원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대해

“선생님, A 환자가 B 환자의 유두를 핥았어요. 어떻게 조치를 하면 좋을까요?”


당직이 시작되고 받은 첫 노티였다. 말 그대로 어안이 벙벙했다. 의사로 병원에 근무하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해 노티를 받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어 간호사에게 재차 확인했다. 환자가 불안해하거나, 환청이 악화되어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자신 있게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교과서에도 어디에도 없을 내용이었다. 두 사람 모두 나의 담당 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환자 기록을 확인해보고 조치하겠다는 말과 함께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A 환자는 지적 장애를 포함한 발달장애가 있는 2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5년 넘는 시간 동안 수없이 입원, 퇴원을 반복하고 있었다. 퇴원하여 집에서 지내는 기간은 사실상 거의 없었다. 충동 조절 능력에 특히 문제가 있어 병원 바깥에서는 다른 사람과 싸움을 한다거나 성추행을 하는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해 부모의 힘만으로는 감당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A는 병동에서도 다른 환자들 또는 치료진에게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곤 했었다.


B 환자는 30대 후반의 만성 조현병 환자였다. 적지 않은 경우 조현병은 초기에는 망상, 환청 등의 증상과 이로 인한 문제가 두드러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과 의욕이 점차 사라지는 경과를 보인다. 적절한 치료를 통해 질병을 조절하지 않으면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아무 것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B의 병동 생활 기록을 보면 유의미한 내용이 없었다. 혼자서 침상에 누워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충동 조절이 되지 않는 A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B는 성적 호기심을 시도해볼 수 있는 손쉬운 대상이었으리라. 이번에 순회를 돌던 간호사의 눈에 처음 띄었지만 비슷한 일은 충분히 더 있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파악된다고 해서 해결책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약물을 통해 치료를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환자들의 특성 상, 면담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고 원내 진료부 회의에서 이 문제를 안건으로 올렸다. 그러나 애초에 획기적인 방법이 있을 수 없는 문제였다. 결국 환자들을 퇴원시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두 환자를 같은 생활 공간에 둘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최근 개정된 법으로 인해 더 오래 입원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일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비단 노티의 당황스러움 때문만은 아니다. 이 일을 통해 정신과 입원에 대해 새로운 방향에서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시는 정신건강의학과 환자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탈시설화가, 퇴원이 권장되던 시기였다. 법이 새로이 만들어져 환자들의 입원 요건이 까다로워졌고 입원을 하더라도 긴 기간 동안은 어려웠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의 변화에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환자들의 퇴원을 내심 속으로 반겼다. A와 B 환자 모두 병원 입원을 통해 개선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았다. 환자들의 입원 기록을 읽으며, 가족들의 편의를 위해 환자들의 인권을 제약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몇 달 뒤, 두 환자 모두 병원에 다시 입원해 공교롭게도 나의 담당 환자가 되었다. 어찌 된 영문인가 싶어 알아보니 A는 어머니를 폭행해 안와 골절을 일으켰다고 했다. 성추행으로 경찰서에도 다녀왔다. A의 어머니는 아들을 병원에 계속해서 입원시키는 것에 큰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바깥에서는 A를 도저히 돌볼 수가 없었다. B 역시 마찬가지였다. B는 퇴원 후에 집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식사도 거의 하지 않았고 방에 누워만 있었다. 3주 가까이 씻지 않아 몸에서 악취가 날 정도가 되었다. B의 나이든 부모님은 거동이 불편했다. 경제적으로도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어, B를 집에서 관리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가족들의 무책임함 때문에 환자가 불필요하게 입원해 있다는 나의 생각은 무척이나 오만한 것이었다. 


환자들이 불필요하게, 혹은 강제로 입원하면서 인권을 박탈당하는 일이 정신건강의학과의 영역에서 계속해서 있어왔다. 이러한 문제와 모순이 쌓여서 사회의 규칙이 다시 만들어졌다. 이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환자를 위한 탈시설화였지만 급격한 변화는 곳곳에서 환자, 나아가 환자의 가족을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았다. A가 B의 유두를 핥는 황당한 일 때문에 조금 더 빨리 진행되기는 했지만 두 사람의 퇴원은 그 일이 아니었더라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도에는 필연적으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사각지대를, 그리고 사각지대에 속한 사람들의 슬픔을 직접 보고 난 뒤에는 쉽게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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