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치료 세션 #31, 오후 2시 – 2시 45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제는 오후에 커피를 많이 마신 탓인지 밤 늦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하루 종일 졸린 것이다. 짧은 진료는 집중해서 문제없이 마칠 수 있었지만 40분이 넘게 이어지는 정신치료 세션에서는 달랐다. 졸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정신치료는 대화를 통해 환자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치료 방법이다. 의사와의 대화, 관계, 그리고 감정은 환자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핵심 요소로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한다. 정신분석가 선생님들께 나와 동료들은 말 한 마디, 단어 하나를 선택하는 데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환자와 의사 사이의 감정 변화에 집중할 것을 지도받았다.
그런데 이렇게 세심해야 할 정신치료 세션에서 졸고 만 것이다. 이것은 진료실 내에서 벌어지는 상황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명백하게 나의 수면 부족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니, 환자의 마음을 들여다볼 단서가 될 리 없었다. 어찌저찌 수습은 했지만 환자에게 미안했고 한편으로는 ‘나도 사람인데, 그리고 잠을 못 잔 걸 어떡해!’ 라고 합리화하며 남은 오후를 보냈다.
얼마 뒤에 우리의 정신치료 과정을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과 평일 저녁에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강의실에서의 수도승 같은 절제된 모습과는 달리 유쾌한 모습이셨다. 동료들 모두 선생님의 인간적인 매력에 빠져들어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때에는 미처 알지 못했는데, 이 날의 저녁식사는 평소의 다른 회식과 다른 점들이 있었다. 하나는 끝나는 시간이 오후 9시 30분으로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생님께서는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술을 싫어하지 않으시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의아한 부분이었다.
나중에 다른 경로로 이유를 알고 나서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선생님께서는 다음 날 진료에 영향이 있을만한 일들을 전혀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었다. 잠자리에 늦게 들거나 술을 많이 마셔서 컨디션에 영향을 받으면 진료실에서 환자와의 사이에 흐르는 감정 변화에 제 때에 올바르게 반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치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외부 요인을 최소화하신다고 한다.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학계에서 이미 크게 이름나셨고 진료와 학술 활동, 후학 양성까지 수많은 활동들을 병행하고 계신 선생님께서는 우리 젊은 의사들보다도 더 초심을 잃지 않고 계셨다. 수도승 같다는 우리의 느낌은 이런 부단한 자기 절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진료 시작 2분 전에 가운을 휘날리며 진료실에 도착하곤 했던 나는 스스로의 모습을 반성했다. 그 뒤로 진료를 위한 컨디션 유지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지금은 진료 시작 15분 전에 책상 앞에 앉아 환자를 기다리며 호흡을 고르고 마음을 가라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