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지가 언젠가 너에게 닿을 수 있기를
안녕.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가끔 네 생각을 하는데, 너는 어떨지 모르겠네.
만약 너도 내 생각을 할 때가 있다면, 나는 너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 궁금해.
사람을 한 수식어만으로 정의 내릴 수는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나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추억이라고 명명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조금 이기적인 생각을 하기도 해.
인연이란 참 단순하고 복잡해. 너무 쉽게 친해져서는, 너무 쉽게 멀어져 버리기도 하고,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때로 복잡하게 얽혀있기도 하지.
우리는 분명 누구보다 가까웠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습은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모르는 사이가 되었다니. 그때 우리가 나눴던 우정이 일시적인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을까. 나는 사실 알고 있었어, 그리고 때로는 몰랐어. 친구가 인생의 전부였던 시절에 만나 매일을 함께해서 그런지, 나는 너에게 나도 모르게 꽤나 많은 것을 바라고 있었던 것 같아. 너도 나한테 그랬을까. 나는 어떤 친구였을까. 재미없는 친구, 말없는 친구, 답답한 친구이기도 했겠지. 그래도 나는 너와 함께할 때만큼은 나를 숨겨가며 너를 위했던 적이 많은 것 같아. 후회하지 않아. 너를 탓하는 것도 아니고, 알아달라는 것도 아니야. 그냥 그렇게 너와 함께했던 기억들을 다시 떠올려볼 뿐이야.
우리가 멀어진 이유는 뭐였을까.
네가 싫어진 나로 인해, 내가 싫어진 너로 인해,
너와의 눈 마주침을 피했던 나로 인해, 나의 인사를 피하던 너로 인해.
그리고 때로는 너무나 당연한 시간의 흐름에 의해.
우리의 관계는 수명이 다한 걸까. 끊어진 걸까.
아니면 그저 스쳐가는 과정이었을까. 더 나은 관계를 맺기 위한 하나의 연습 과정이었을까.
그 시절을 떠올리면 너와 함께했던 기억들밖에 떠오르지 않아.
네가 전학을 간다는 말에 학교에서 하루종일 울었던 일,
너의 아파트 놀이터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일,
네가 나에게 연락도 없이 다른 친구와 만나서 놀았다는 걸 알고 속상해 연락을 피했던 일,
지금은 너무 오래된 노래가 그 당시에는 최신 유행곡이어서 스피커 볼륨을 키우고 함께 들어봤던 일,
항상 동그랗고 작은 손거울을 들고 다니던 일,
틈만 나면 유행하던 필터로 함께 셀카를 찍던 일,
같은 반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가장 친했던 너에게마저 끝까지 숨겼던 일,
잘 생각해 보면 사소한 추억들이 참 많은데, 그 추억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과거에 잘 있는 걸까. 내 기억에는 잘 있는 것 같은데, 너의 기억 속에도 잘 있을까. 잊지는 않았을까.
가끔 좀 신기하기도 해. 그때 내게 가장 가까웠던 사람은 너인데, 너에게도 당시에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 나였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지기도 해. 서로 그때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참 좋을 텐데, 각자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고 결코 입 밖으로 꺼내지지 못하고 있는 그 추억들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하고.
물론 아직 이어지고 있는 인연들도 있지.
혹시 그 관계를 나 혼자서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끔 두렵기도 해.
친구 관계에서 서로에게 확신을 준다는 건 참 쉬워 보이지만 은근히 어려운 일인 것 같아.
서로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일까.
너는 가벼이 여길 수 있는 것들을, 나는 한없이 무겁게 여기기 때문일까.
그냥, 언젠가 너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어.
만약 내일 당장이라도 길거리에서 우연히 너를 마주친다면,
우리는 서로 긴가민가하며 지나쳐버릴지도,
어색한 인사만을 남긴 채 지나쳐버릴지도,
서로를 정확히 알아보더라도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의 두께로 인해 모른 척하며 지나쳐버릴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우리가 카페에 앉아서 다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어려서 그랬지, 와 같은 말들을 나누며 당시의 기억들을 하나둘씩 꺼내놓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사실 네가 좋아했던 사람을 나도 좋아했었다는 뒤늦은 고백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시간이 흘러 조금은 어른스러워진 서로의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정말 그렇게 된다면
나는 정말 기쁠 거야.
혹여나 너는 그 시절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또는 그 시절을 별거 아닌 기억의 한 조각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나는 그 기억들을 추억이라고 기억한다고 말해주고 싶어.
물론 좋은 기억들도, 좋지 않은 기억들도 있지만,
시간의 흐름으로 흐릿하게 미화되어 버린 기억들도 있지만,
그냥 추억이라고 하려고.
왜냐하면 나는, 그리고 아마 너도,
우리는 함께 그 시절을 보냈고, 그건 변함없는 사실이니까.
어디선가 잘 살아가고 있을 너희에게.
눈 내리는 어느 날,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어른이 되고 싶은 내가.
그때를 추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