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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짠 Sep 16. 2021

편의점 블루스 2

23시 11분. 편의점 안의 사람, 편의점 밖의 사람

https://brunch.co.kr/@eroomstar/219


5. 다시 72시간 전

편의점 안과 밖은 달랐다. 하루가 끝나가는 이 시간이면 편의점 안에 사람이 있고 편의점밖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편의점 안 보다 편의점 밖에 사람이 많다. 이상하다. 무엇이 어떻게 왜 이상한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 내가 죽었다는 걸 인정하기도 전에 이상한 상황에 적응부터 해야 한다. 여기서도 살아야 하니까.


노란 유치원복을 입은 아이가 왜 이 늦은 시간에 혼자 여기 있지? 골목 입구 쪽에는 중년 남녀가 서로 삿대질하며 싸우고 있다. 저러다 남자가 여자를 한 대 치면 어떡하지? 그리고 종이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끄는 할머니는 고단해 보이는데도 여전히 바쁜 손놀림이다. 이 밤에. 그때 편의점 안에 들어갔던 여자가 나왔다. 사람들의 시간은 흐르고, 내 시간만 멈춘 건가? 어찌할 바를 모른  편의점으로 다시 시선을 돌리는데, 등이 보였던 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설마, 내가 보이는 거야?`


"서로 볼 수도 있네요?"


깜짝 놀라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편의점 안에 있던 학생이 내 옆에 있다.


"넌, 사람이야 귀신이야?"

"그쪽도 귀신이죠? 나도 그래요."


귀신이라는 말에 비수가 꽂힌다. 정말 죽었단 말인가. 사는 동안 슬펐는데, 죽어서 남들 다 가는 천국도 지옥도 못 가고 귀신까지 돼야 한다니. 이건 하늘이 내게 한 반칙 중에 최악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하늘은 내게 지나치다.


"정말 다행이야. 너랑 말할 수 있어서."

 

그러고 보니 살아서나 죽어서나 외로운 건 마찬가진가보다.


"학생이지? 어쩌다 죽었어?"

"그게 지금 중요해요? 영화관 뒤 공터에서 칼에 찔렸어요."


학생의 몸을 살폈다.


"칼자국은 없는데?"

"영화랑 다르죠? 죽으면 상처나 흔적은 사라지네요. 이걸 알려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네요. 영화에선 여전히 칼에 찔려 죽은 귀신을 피투성이로 등장시키겠죠?"

"하긴 나도 제일 좋아하는 옷을 입고 있네? 여름인데 가을 옷을."


우리는 잠시 대화를 멈추고 각자의 시선으로 편의점 주위를 둘러봤다. 나는 이 기가 막힌 상황을 두려워했고, 학생은 슬퍼했다.


"이제, 어떻게 돼? 여기서 떠돌아? 아니면 저승사자가 나타나서 데리고 ? 넌 여기 얼마나 있었어?"

"몰라요.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자정 무렵으로 무한 반복해서 돌아와요. 그 전과 후는 없이."

"이 시간에 죽었어?"

"아뇨. 식당 아르바이트 마치고 오다가 그 새끼들한테 붙잡혀 죽었으니 새벽 2시 반쯤?"

"그럼, 시간도 장소도 여기랑 상관없는데, 왜 여기로 돌아와?"

"저 유치원생도, 할머니도 다 죽었어요. 눈을 마주치거나 말할 순 없어서 서로가 존재하는 것만 알아요. 서로 다른 이유로 이 편의점과 인연이 있겠죠? 그렇게밖엔 추측이 안 돼요."

"왜 우린 귀신이 된 거야 그리고 어떻게 돼?"

"누나는 살면서 모든 걸 알았어요? 태어난 이유나 인생이 어떻게 될지 알았어요?"

"몰랐지."

"여기도 같아요. 모른 채로 살아요. 아니 죽어있어요. 이유도 일어날 일도 모르는 건 인생이나 여기나 같다고요."

"너 똑똑하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해할 순 없지만 일어나는 수많은 일 중 하나구나. 일단 겪어낼 수밖엔 없네. 그럼, 각자의 살아온 인생에서 각자의 이유로 의미 있는 장소로 온 건가?"

"그래요. 이곳이 내겐 의미 있죠."


학생의 눈빛이 바르르 떨렸다. 무슨 일이 있어야 저토록 슬픈 눈이 될까.


"내 인생에서 편의점이 뭐 얼마나 중요하다고 편의점으로 온 걸까?"

"그건 누나가 알죠."

"의미? 편의점이 내게? 그렇지 않은데. 이상해. 아무튼, 너랑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내가 왜 여기를 떠도는지 알게 되면 하늘로 가려나?"

"무한 반복하며 알아가야겠죠? 난 어머니를 보기 위해서란 걸 알게 됐어요. 엄마가 김밥집 아르바이트 끝나고 퇴근하면 이 앞을 지나서 집으로 가거든요. 내가 알바가 없는 날은 퇴근하는 엄마를 마중 나오곤 했어요. 편의점에서 만나서 둘이 라면 먹을 때 참 행복했어요. 그 시간이 이맘때예요."

"오늘도 봤어?"

"아뇨, 못 봤어요, 한 번도. 내가 몇 번 여기로 왔을까요? 세 번일지 만 번째일지 모르지만, 왜 한 번도 못 볼까요?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 봐 걱정돼요. 나도 없으니 혼자서 어떻게 살아가실지…."

"어? 너!"


학생은 사라지고 없었다. 귀신이 눈물을 흘린다니, 말도 안 돼서 사라진 걸까? 소름 끼치는 23시 11분이다.


6. 오늘 밤

23시 11분. 나는 또 편의점으로 돌아왔다. 어디서 어떻게 있다가 여기로 돌아오는 걸까? 살아있을 때보다 죽었을 때가 궁금한 게 더 많다니.


아르바이트생에게 인사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나니까. 안주 앞에 서 있지만 4분 정도만 서 있으면 된다. 어떤 날은 안주를 고르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편의점 안과 밖을 서성거리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여기 나타나면 23시 11분이다.

학생은 그날 이후 보지 못했다. 지금까지 본 드라마가 이 상황을 추리하는 데 도움이 됐다. 눈물이 하늘을 감동하게 해서 엄마를 볼 수 있게 했고, 비로소 모든 한을 푼 학생은 훨훨 슬픔 대신 엄마를 위한 애틋함을 안고 하늘로 올라갔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슬픈 아이가 슬픔을 안고 사람들 사이를 떠도는 건 너무 가혹하니까. 그 학생은 엄마를 보고 싶어서 편의점으로 돌아오곤 했다면, 나는 왜 여기로 올까? 저 유치원생이 여전히 편의점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이유가 뭘까? 소원을 못 이룬 아이는 언제까지 여기를 맴돌까? 저 중년 남녀는 오늘도 싸우는데, 그들은 어떻게 해야 이 굴레에서 벗어날까? 한 번도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때려야 끝나려나? 내가 말릴 수 있으며 좋으련만. 할머니가 안 보여서 다행인 걸까? 더 끔찍해진 걸까? 의문투성이다. 살아있을 때와 달라진 건 많은데,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 유령으로 존재하는 것은 같다. 살아 있을 때 적응이 돼서 그런지 귀신으로 존재하는 게 사람들 사이 유령 취급받는 것보단 낫다. 유령 같은 사람보다는 귀신이라서 사람들 사이 유령으로 존재하는 거니까. 앗, 또 사라지고 있다. 남산 도서관이나 5성급 호텔 같은 데 나타났으면 더 좋을걸. 내일 또 여기로 올까? 이럴 줄 알았으면 편의점 들락거리며 술사지 말고 다른 선택을 할걸.


사라지면서 빽빽거리는 구급차의 비명을 들었다. 무슨 일일까? 짧은 찰나, 그 학생의 등이 보였다. 여전히 편의점 밖을 바라보고 있는 등이 구급차 소리와 함께 벌떡 일어났다.




롤러코스터가 수직하강을 시작했습니다. 롤로코스터는 느린 일상속도로 시작해서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속도로  툭 수직하강하고 쑥 수직상승하죠. 그걸 위해 1편이 존재했어요 전혀다른 전개를 위해^^

다음 주 목요일 < 3편-1화 1>가 이어집니다. 주인공에게 무슨 일이? 그(그녀)에게 일어날 놀라운 일이 여러분 곁으로 다가갑니다^^

목요 단짠 스토리(소설)를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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