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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짠 Oct 07. 2021

그녀가 사라졌다

용서해 보셨나요?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한다고 우겨서 미안해

 덜커덩 문소리가 요란하다. 오늘도 취해서 들어오는 그녀다. 왜 그녀는 취하도록 술을 마시는 걸까? 도대체가 마음에 안 든다.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를 이해하진 못하겠다. 아니 그녀의 어떤 행동이 불편하다. 몹시.

특히 귀가 이벤트는 언제나 불쾌하다. 잠든 그녀 등 뒤에서 예민한 촉각을 곤두세우다 잠 못 들곤 한다. 제길 불공평해.


잠이나 자자 어차피 그녀는 술에 곯아떨어져 씻지도 않고 널브러져 잘 테니. 그녀를 신경 쓰느라 잠 못 들일은 아니지... 아니지...

몇 분이 지났지? 다시 잠들어야 해. 그러나 나는 뒤척인다. 그녀의 방문을 열고 엉덩이를 뻥 차주고 싶다.  


 잠 못 드는 이유가 단순히 그녀를 비난해서만은 아니겠지. 그녀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유도 단지 그녀가 술 취해서만은 아니겠지. 나에게 그녀란?

오늘 밤은 잠들기 틀렸다. 잠들어야 하는 나를 붙잡고 일어나 그녀에 관한 생각으로 밤을 지새우고 만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그런 낡은, 얘기는 접자.




 처음 만난 그날부터 오늘 이 순간까지 그녀 곁을 떠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우린 자주 떨어져 있었다. 지금 그녀가 나의 동의도 없이 취한 채 잠들어버린 것처럼.
언제부터 각을 세우게 된 걸까. 우린 분명 하나였는데.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너무나 멀어진 그녀와 나의 간극 탓에 술에 취하고 싶어지는 밤이다. 이성을 차리자. 둘 중 하나는 정신 차려야 하지 않은가.      

                   

 나는 그녀가 속상하다.
그녀의 호기심 가득한 작고 반짝이는 눈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 기억이 생생하지는 않다. 첫 눈부심에 대한 기억을 지우기에 충분할 만큼 우리가 함께 걷는 동안, 그녀의 걸음걸이는 지그재그로 휘청거렸으니까.


처음 그녀가 술을 마셨을 때는 첫사랑이 떠났을 때.
처음 그녀가 술에 취했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여겼을 때.
처음 그녀가 술 외에 의지할 게 없었을 때는 아무도 그녀 옆에 없었을 때. 나마저도.


 그러다 다시 만난 그녀는 마음속 이야기를 술에다 하고 있었다. 나는 강력히 비난했다.

"네가 할 수 있는 저항이 이것밖엔 없어?"
질문엔 답도 없이 그녀의 어머니가 갑자기 사라진 날, 그날에 대해 두서없이 눈물 맺혀 얘기했다.
"내 곁에 늘 함께 있길 바라고 있어야만 했던 엄마가 어느 날 집에서 사라졌어.''


 어린 그녀가 아무리 집안을 둘러보고 뒤져봐도 엄마는 없었다고 한다. 동네 곳곳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엄마는 없다. 사라졌다.
 "공기가 나를 숨 쉬게 하는데, 나의 공기가 사라졌어 내 영혼의 숨은 멈춰버렸어."
그녀는 힘없이 그날들의 상처를 새어 내었었다. 그날, 난 그녀가 안쓰러워서 하염없이 안고 또 안아주었다.

   



 큭큭 크흑  목이 메어 기침을 내어 뱉는다. 어? 잠이 들었었네. 다행이다. 밤새워 뒤척이느라 지친 몸을 일으킨다. 서둘러 그녀의 방으로 갔다.
 '어? 문이 열려있네?'

그녀의 이불이 펼쳐져 있고, 그녀는 없다.


그녀가 없다? 없을 리가 없는 그녀가 없다. 펼쳐진 주인 없는 이부자리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어디로 갔지?'

 없을 리가 없는 그녀가 없다. 정체 모를 불안감이 소리 없이 방안을 점령하려 들자마자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cheer up cheer up' 컬러링이 하염없이  반복되고, 반복되는 만큼 내 마음은 불안감으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너, 어디 있니?"
그녀는 왜 늘 나에게 불안감을 주는 걸까. 그런데도 나는 그녀 곁에 머무는 걸까. 아니, 그녀의 걸음을 뒤쫓아 가고 있었을 뿐인 건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심장이 요동친다. 죄어 온다.

"너 어디니?"



 3일이 지났다. 어제부터 전화기는 아예 꺼져있다. 위치추적? 이런저런 장치는 드라마에선 가능했는데, 지금 할 수 있는 건 애타게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없어질 리가 없던 그녀가 없어지고, 나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랑했고, 나무랐고, 화냈고, 비난했던 그러면서도 곁에 있을 수밖에 없던 그녀가 없어졌다.


 사라졌다. 그런데 그녀의 친구 전화번호 하나 알지 못한다. 그녀가 좋아하는 장소도, 그녀가 숨을 만한 곳이 어디인지도 짐작조차 하질 못하다니.
"내 곁에 늘 함께 있길 바라고, 있어야만 했고, 있었던 엄마가 어느 날 집에서 사라졌어. 공기가 나를 숨 쉬게 하는데, 나의 공기가 사라졌어. 내 영혼의 숨은 사라졌어."

그녀의 울먹이던 목소리가 아니, 그 아픈 눈동자가 떠올랐다.

"미안해. 아무리 해도 내가 대신할 순 없었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녀를 찾아야 하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현관문을 쿵쾅거리던 그녀가, 오늘 밤 내 잠을 쫓아내기를 간절히 바라며 현관 바닥에 앉는다.
 "너, 어디 있니?"
내가 너의 곁에 있었는데. 왜? 너는 나를 못 느꼈니.
 문은 아침 햇살이 등 뒤 창문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올 때까지도 굳게 닫혀만 있다.


 문득, 그녀의 상자가 생각났다.
그녀는 편지, 엽서, 영화 티켓, 심지어 영수증까지도 특별한 순간이라 여겨지는 날의 기록을 모아두곤 했다. 그런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그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지도 잊고 있었구나. 비틀거린 건 그녀 탓이 아닌, 내가 그녀를 비틀거리게 한 것은 아닐까? 난 그녀를 잘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상자가 어디 있지? 거기에 뭔가 있을 거야!'   


 상자 속엔 그녀와 나의 순간이 옹기종기 모여 그녀의 냄새를 아스라이 퍼트리고 있었다. 'Begin again' 영화 티켓, 놀이공원 입장권, 함께 갔던 커피숍 냅킨, 상자 속은 보기보다 많은 것들로 부산스럽게 차 있었다. A4용지 크기에 깊이는 15cm 정도의 상자로, 신발 상자보다 조금 더 클  뿐인데 그녀가 행복했던 순간, 기억하고 싶었던 순간이 모여 있었다. 빼곡하게도 채워갔네.

순간이 모여 상자가 되었다. 마치 그녀가 이 상자에 들어가 버린 듯했다. 그런 그녀를 꺼내 오기라도 하려는 듯 상자 속 사진, 엽서, 영수증 그리고 도토리 한 알까지  꼼꼼히 살펴봤다.
 이 사진은! 그녀를 지그재그로 취해 걷게 한 부재중인 어머니 사진. 환하게 웃으며 세련된 보랏빛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어머니를 한참 바라봤다.
'어머니, 그녀도 사라졌어요.'     




 첫날 그러니까 그녀가 사라진 첫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어머니 봉안당으로 달려갔었다. 주변을 차로 몇 바퀴를 돌아보았고, 사무실에 들러 방문 기록을 살폈지만, 그곳에 오지 않았다.

해가 질 녘까지 떠나질 못하다, 사무실에 그녀가 찾아오면 전화해 달라는 요청을 하고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나 멀었다. 팽팽하게 당겨져 언제 끊어질지도 모르는 혈관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슬픔. 팽팽한 슬픔.
칼날 끝에 심장의 한 면이 닿아 버렸다.      


 수소문한다는 것, 마냥 기다린다는 것, 경찰서를 찾아가 그녀의 안부를 묻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생사를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매일 밤 그녀가 쿵쾅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설 것만 같아 외출도 안 한다. 오직 현관문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나날들, 내가 그녀의 상자 속으로 들어가 버린 걸까?

"너는 어디 있니?"
"어디 있니?"
무슨 일이니? 걱정된다. 화가 나거나, 비난하거나, 그런 게 아닌 걱정된다. 보고 싶다.  너는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을까? 지금.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댄다. 사방을 채우는 날카로움.

 고개를 들어 볼까? 아니, 난 고개를 들 수 없다. 손목이 차갑다.
"현수야!"

어머니의 목소리가 부른다. 고개를 들어 사방을 살핀다.
"어머니!"

엄마와 시선이 마주쳤다. 사방을 둘러싼 사람들 속에서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 그리고 보이는 엄마의 모습.
'왜 그렇게 슬퍼 보이세요? 엄마.'
엄마는 내게로 다가오려고 안간힘을 쓰며 사람들 틈을 밀쳤지만 내게로 오지 못하셨다. 엄마가 다가오기도 전에 차에 올라타야만 했으니까. 그리고 나를 태운 차는 빠르게 출발했으니까.
 다시 고개를 숙인다. 아니, 숙이기 전에 우리 집을 한 번 더 보고 싶어 고개를 뒤로 돌려 창밖을 본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저만치 멀어지는 집, 너 그리고 나.'




  "정유나 씨 살인 혐의를 인정하시나요?"
눈이 유난히 작은데 키는 유독 큰 형사의 질문은 영혼이 없다. 그러나 난 영혼을 담아 대답했다.

 "네, 내가 죽였습니다."
그렇다. 그녀는 사라졌다. 내가 죽였다. 그 순간이 기억나냐고? 기억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녀를 찾아다니며 기다리던 날의 서른 번째 밤이 지나갈 무렵 그러니까 내가 그녀의 상자 속에 갇혀 버린 후 어느 날이었다. 문을 쿵쾅거리는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그 소리가 마지막 비명을 지르더니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몰려 들어왔다. 코를 틀어막으며 쉰 기침을 내뱉던 사람들은 그녀의 방을 용케 찾아 들어갔고 그녀의 이불속에서 그녀를 발견했다. 나에게 그녀가 죽었다고 알려 준 후 그들은 사전 연습이라도 한 듯이 일사불란하게 그녀를 들것에 싣고 나갔다.


 '가지 마. 겨우 다시 만났는데 어디가?'

그런데 난 그녀를 붙잡을 기운이 없었다. 멍하니 그녀가 문을 빠져나가는 것을 바라볼 뿐. 그녀는 사라졌다. 그녀는 죽었다.




 나는 그녀를 죽였다. 이제, 그녀는 없다.
화내거나, 비난하지 않아, 걱정도 하지 않아도 돼. '넌 이젠 술 취하지 않아, 비틀거리지 않아.'


 다시 공원을 산책할 수 있을까?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어가며 수줍은 미소를 건네는 숲길을 다시 걸을 수 있을까? 뭉게구름이 파란 하는 위에 동그라미를 그리는 순간, 구름과 눈을 마주칠 수 있을까? 그 모든 순간, 그녀가 나와 함께 있을까.
 
 기억한다.
그녀를 처음 만난 날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그녀가 처음 술 취하던 날
너를 기억한다.


 계절이 몇 번 지나갔지? 나와 너는 나이를 같이 먹는데, 나만이 세월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 나는 홀로 그녀의 나이와 나의 나이, 모두를 내 삶에 짊어진 채 살아 있다.
  

  나는 너를 용서했는데, 너는 나를 용서할 수 있니?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한다고 우겨서 미안해.
이제야 너를 진심으로 사랑해.
나를 용서해주겠니?


용서해보셨나요? 더 큰 것을 뺏고 나니 용서하게 됐네요.

                                                      

- 끝-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길들여지는 과정까지 감당한다는 것일까?
길들여짐도 길들임도 서로를 위한 여정일 때만이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  - 단짠 -
이번 주는 '시간의 언어' 브런치 북에 올렸던 단짠 소설 중 한편을 올립니다. 예전에 썼던 이야기를 다시 정리하고 있어요. 다시 보면 보이는 빈 곳을 채우고 싶습니다. '편의점 블루스'는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어요. 곧 다시 이어가겠습니다. '편의점 블루스'는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어요. 곧 다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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