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취업성공수기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 헬렌 켈러 -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상조회사라고 했다. 사람 인에 등록한 이력서를 보고 연락을 했고 면접을 보러 오지 않겠냐고 했다.
교육 강사라는 키워드에 낚여서 OO 기업교육지원센터라는 회사에 면접을 갔다가 보험 브리핑 영업을 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전화를 받고도 심기가 상당히 불편했다.
(라떼마마) "혹시 영업하시는 분 찾으시는 건가요? "
(담당자) "영업직이 아니라 본사 내근직입니다. 여행 관련 고객관리, 여행 사무원 업무입니다. "
(라떼마마)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OO 분야에서 일을 해왔고 해당 업무로는 경력이 없는 데 괜찮을까요?"
(담당자) "OOOOO의 이유로 라떼마마 씨의 OOOOO 한 경력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면접에 응하시겠습니까? "
(라떼마마) " 네, 응하겠습니다. OO 일어날 OOO로 가겠습니다. 당일 오전에 한번 더 문자 드리겠습니다. "
중저음의 담백한 말투에 사기꾼은 아닌 것 같았다. 무엇보다 회사의 위치가 집에서 지하철역 두 정거장이라 홀로 아이를 키우는 내게 환상의 위치였다. 서울에서 11년간 살면서 경기도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버스와 지하철을 수차례 갈아타며 출근시간이 1시 반 30분 이상인 동료들을 보았다. 하루에 3시간을 지옥철과 버스에서 이미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택시비로 몇만 원을 써야 하는 삶을 보며 직장의 위치는 곧 돈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당시 충격으로 식사를 거르기 일쑤였던 나는 의도치 않게 간헐적 단식을 하게 되었고 체중이 5킬로 그램이 감량될 만큼 스트레스가 컸다. 맞지 않았던 정장의 스커트가 기분 좋게 몸에 착 감겼고 애쓰지 않고 지퍼를 올릴 수 있었다. 왠지 이번에는 잘 될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다.
24살 3-4개월에 걸쳐 진행되었던 면접 과정이 생각났다. 일명 유관순 복장이라고 하는 블랙 스커트에 화이트 블라우스 + 머리망 이 3종 세트를 했었고 당시 면접을 보러 온 다른 친구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서른여섯 살이고 비록 신입 모집에 가는 면접이지만 경력이 있었다. 처음 하는 업무도 처음이지 않은 것처럼 할 수 있는 눈칫밥과 융통성, 고구마를 먹은 것 같은 답답한 상황도 유연하게 수용하며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적어도 내 나이에서는 줄 수 있어야 했다. 유관순 복장의 흑역사는 잊고 커리어 관련 교육을 할 때 내가 엄마들에게 조언했던 대로 나를 이미지 메이킹했다.
출처 - 도로시 주얼리 / 팬톤
체크무늬 H라인 미디스커트와 블랙 컬러의 블라우스에 스카프를 둘렀고 승무원 망 머리를 고집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고 단정하게 고데기로 웨이브를 넣었고 대신 검은색 실핀으로 인사할 때 흐트러지지 않을 만큼 고정을 했다. 오렌지 계열의 코랄 톤 립스틱을 발랐고 아이섀도는 펄감이 크지 않고 깨끗하고 맑은 느낌으로 세미 스모키로 메이크업했다. 액세서리는 사람을 예쁘게 보이게 해주는 조금 큰 사이즈의 진주 귀걸이를 착용하고 손목시계를 둘렀다. 이야기를 할 때 시선이 분산될 수 있는 반지는 착용하지 않았다.
- 라떼마마가 취뽀했던 지극히 현실적인 이미지 메이킹 -
당시 나는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 업무를 해야 하는지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면접 준비를 해야 했다. 대단히 큰 회사에서 다수로 면접을 보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해당 인터뷰는 담당자와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회사가 원하는 직무에 내가 결을 맞출 수 있을 것인지를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1. 회사 홈페이지 확인하기
2.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 사업영역을 확인하기
3. 최근의 이슈와 업계 동향 파악하기
4. 내가 그동안 했던 일과 이룬 것들(일종의 타이탄의 도구들 같은 것)을 굵직하게 3가지 정도로 정리하기
5. 다녔던 회사를 퇴사한 이유, 육아를 하면서 동시에 내가 거르지 않고 꾸준히 해왔던 일들에 대해서 정리하기
6. 회사에 입사하면 이것만큼은 개선시킬 수 있겠다. 싶은 것들 생각해보기
7. 1분간의 자기소개
8. 회사에 대해서 궁금한 것들 3가지로 정리하기
9.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하는 평가와 내가 평가하는 나에 대한 이야기
10.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온 이유와 육아에 대한 답변
상기 10가지에 대해서 A4용지 5장 정도로 정리를 해서 밤새 답변하는 연습을 했다. 잠을 줄이며 연습하고 또 연습을 했다. 간절했다. 경력에 맞건 안 맞건 일단 이 불안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잘 모르는 낯선 사람들과 낯선 환경 안에서 낯선일로 낯선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나의 이 고통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불어 한 달에 한 번씩 들어오는 월급은 내게 최소한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는 숨구멍이라도 될 것 같았다.
" 급여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세 후 180 만원 이고 ~~~~~~~ "
" 아, 네네............"
..
..
다른 말은 들리지 않았다. 순간 표정 관리가 안되기도 했지만 미안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면접을 봐주셨던 부장님은 내 마음을 단번에 읽으셨다. 책이라는 키워드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고 OO사업도 하고 있고 OO 인수 예정이라 나와 같은 경력의 사람들이 들어와서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락을 했다고 하셨다. 내가 일하는 시간을 대략적으로 계산했을 때 180만 원이라는 급여는 정말 최저시급에 해당했다. 자존심이 상했다. 쥐뿔 잘하는 것도 없으면서 세상에 널린 게 석사학위 소지자인데 돈만 주면 다니는 대학원이 뭘 그렇게 대단하다고 자존심이 삐죽 튀어나왔을까? 내 표정이 읽힌 것 같아 당황스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급이 0원 인 것보다는 당연히 더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는 의심할 나위가 없었다.
이어서 사장님 면접을 보았다. 뒤이어 회장님 면접을 보았다. 면접을 진행한 부장님은 아마 OO에서는 법인세를 가장 많이 내는 회사라며 은근슬쩍 회사 자랑을 보태셨지만 어쨌거나 밖에선 기. 승. 전. 듣보잡 회사인 건 맞았다.
180만 원 주면서 무슨 면접을 실무자에 사장에 회장까지?
큭큭 코웃음이 났다. 뭐 이런 회사가 다 있지?
월급이 작아도, 자존심이 상해도, 경력과 저 멀리 있어도 그럼에도 뽑아주시면 감사합니다. 하고 가고 싶었다.
회장님 면접에서 나의 소개를 "태산을 옮기려면 작은 돌부터 옮겨야 한다"는 중국의 격언을 빗대어서 말씀을 드렸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안 맞으면 최소한 예의라도 바르게 내 몸과 말을 갖추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180만 원을 준다는 대구의 한 중소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이틀 뒤 전화가 왔다.
(담당자) " 최대한 빨리 출근하면 좋겠는데요~ 전임자가 임신을 해서 최대한 빨리 인수인계를 원해요. 내일 바로는 좀 무리겠죠? 언제부터 가능할까요? "
(라떼마마) " 괜찮습니다. 내일부터 바로 출근하겠습니다. "
라떼 마마는 그렇게 전업맘 생활을 청산하고 워킹맘의 길로 들어섰다. 감히 20대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온전히 밥벌이를 위해서 일을 찾았고 5년간의 아이 돌봄에서 세상으로 다시 나가며 생업의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부터 해보자고. 너무 멀리까지 생각할 필요 없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옳은 선택을 하면 된다고. 해보고 안 맞으면 그때 그만두면 되고 혹시 또 모를 적성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 지금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 그럼 된 거라고.
선우야, 애썼어. 취업 축하해
서른여섯의 엄마는 상조회사가 무엇을 하는지도 잘 모르고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180만 원 밥벌이를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경력단절 엄마의 성장기록 에세이
01
제적 위기에 직면한 엄마 사람의 생존 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