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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쟝아제베도 Jan 01. 2020

그림 속에 어리는 나의 소망

2020년 새해를 맞이하며

TV를 통해 제야의 종소리가 울린다. 2020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십진법에 익숙해서인지 낯설지 않게 맞아지는 2020년이다. 간결한 숫자의 행운이 마음 깊이 스며드는 느낌이다.    


가족이 잠이 든 시각. 거실과 식탁 위에 걸린 그림을 번갈아 보며 새삼스럽게 나와 가족의 소망을 빈다. 그림 분위기와 같은 여유로 충만한 가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작년에 두 그림을 새로이 바꿔 걸었다. 모네의 <아르장퇴유의 붉은 보트>와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다. 모네의 그림은 경제적 여유를 꿈꿀 수 있는 작품이고, 르누아르의 그림은 벨 에포크 시대의 뉘앙스를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거실과 식탁 위의 그림을 보며 나의 소망을 꿈꾼다.



희망퇴직이니 구조조정이니 하는 용어를 모른 채 자연스럽게 시간이 흘러 정년을 맞이하려던 나의 계획은 어느 날 찾아온 IMF에 무참히 깨졌다. 평생직장으로 생각했던 모기업이 와해된 것이다. 전산실 직원 두 명을 데리고 일본행을 감행했다. 벤처기업의 열풍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두 명의 직원과 IT 개발회사를 창업했다. 그리고 10여 년, 계절이 바뀌는 줄 모르고 전력투구 했지만 결과는 내 편이 아니었다. 아직 아내가 은퇴를 하지 못하는 이유다.


모네의 <아르장퇴유의 붉은 보트>


<아르장퇴유의 붉은 보트>는 나에게 당근과 채찍을 주는 그림이다. 동료 화가들의 도움으로 파리 생활을 시작한 모네는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부인인 카미유와 아들 쟝의 생계를 위한 그림을 꾸준히 그렸다. 모네의 노후는 풍요로웠다. 화가로서의 명성으로 부와 명예를 쌓은 그는 지베르니 수련 연못도 마련하는 등 생활의 안정을 누렸다. 하지만 카미유의 단명으로 조강지처와의 행복을 함께 할 수 없었던 안타까움은 지울 수가 없다.


국민소득 2만 불 시대가 되면 골프는 대중이 즐기는 스포츠가 되고, 4~5만 불 시대가 되면 대중도 보트를 즐기는 여유를 가진다고 한다. 나는 보트를 즐기는 호사스러움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대신 마음의 여유만큼은 가족과 함께 보트를 즐길 수 있는 능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기 최면을 위한 그림 감상인 것이다.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세 번의 긍정은 기적을 낳는다” 는 르누아르의 말처럼 그는 색채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화가다. 긍정의 터치를 나는 좋아 한다. 벨 에포크의 느낌이 강해서다.


지금까지 나는 두 번의 벨 에포크 시기를 가졌다. 88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노조 민주화 열풍에 휩싸여 주홍글씨가 새겨진 나의 이력서는 우리나라에서 발붙일 곳이 없었다. 그때 맞이한 일본행의 기회는 경제적, 예술적 여유를 안겨준 첫 번째 벨 에포크의 시작이었고,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아 가족을 이뤘다는 것이 두 번째였다. 이제는 세 번째 벨 에포크를 기다린다.


올해 대학 4학년이 되는 막내가 졸업하면 가장의 책임과 의무를 다소 벗게 된다. 나의 삶과 주변을 풍요롭게 할 세 번째 벨 에포크를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그림을 보며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2020년에도 그날을 향한 소중한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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