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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쟝아제베도 Apr 14. 2020

호퍼의 그림과 사회적 거리두기

호프를 마시며 에드워드 호퍼를 생각하다

집 근처에 나의 취향을 저격하는 수제 호프집이 오픈을 했다. 저녁 산책을 나서며 아내에게 동행 의사를 타진했다. 아직도 술의 미학을 인정하지 않는 아내다. 하지만 삶의 끈을 놓은 듯한 고뇌에 찬 나의 표정 연기에 속아 나의 곁을 따르고 있다. 20년이 훨씬 넘는 뻔한 연기에 알고도 속아 주었겠지만.


팔짱을 끼고(저녁 바람이 쌀쌀 했기에) 기분 좋게 호프집에 도다. 입구에 걸린 메뉴를 보며 곁눈으로 아내의 표정을 살핀다. 남성 2만 원, 여성 1만 5천 원에 입장하는 무제한 리필 영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주량은 워밍업 정도로도 20,000원을 상회하겠지만, 고흐의 밀밭 그림만 보아도 술에 취하는 아내가 15,000원의 본전을 어찌 뽑겠는가. 차라리 개업 축하비로 15,000원을 기부하고 차후에 단골 서비스를 받는 것이 더 나을 듯싶다.  



술잔 앞에서 나는 아내의 영원한 흑기사다.



사장에게 나의 억울함(?)을 살짝 토로했다. 결국 리필 메뉴가 아닌 단삥 가격으로 두 잔을 주문했다. 소믈리에 감독관처럼 앉아 있는 아내의 잔까지 두 잔을 마셨다. 아내의 술잔 앞에서 나는 영원한 흑기사가 된다. 호프집을 나서는 데 사장이 나에게 살짝 귓속말을 한다.


“새벽 5시까지 영업합니다.”  


인생도처 유상수라고 아내와 나의 음주 취향을 간파한 사장은 나에게 유의미한 정보를 준 것이다. 맥주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를 리 없다. 우량한 정보를 절대 무의미하게 흘리지 않다.

아내가 잠이 드는 시각이 되면 나 홀로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떠올릴 것이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라는 허밍을 날리며 호프집에 들어설 것이며,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처럼 호프의 참맛을 느낄 것이다. 호프집 사장의 예상처럼.  



코로나의 영향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범국가적 캠페인이 되었다. 공원의 산책길에도, 순서를 기다리는 줄에도, 카페의 좌석에도, 버스와 비행기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사회적 이슈가 된 거리두기를 보고 있노라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리얼리즘의 사실주의 화가라는 에드워드 호퍼. 그는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을 예견이라도 했었던 것일까? 호퍼의 그림들은 지금의 상황과 너무도 닮아 있다. 그동안 그의 그림에서 나는  현대인의 소외된 고독과 불안을 느꼈다. 혼술을 즐기기에 더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기도 했다. 이제 호퍼의 그림에 한 가지 더 추가해서 감상을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단절’의 느낌을 가미하는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



‘이렇게 좋은 사람 만나는 시간도 부족한 삶인데, 하물며 형식적인 만남을 위해 애쓰는 것은 시간 낭비 아닌가요?’


옛 직장 동료를 만나면 자주 듣게 되는 명언(?)이다. 그것도 핵인싸의 주장이다. 리바이벌되는 진부함은 있어도 거절의 자기 최면을 걸 때 유용하게 인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 또한 그런 시각의 네트워크에 갈등했던 경우가 있었다. 대표적 갈등은 동창회 모임이었다. 이런 모임에서 개인의 취향인 인싸와 아싸가 구분되는 것 같다. 결코 좋다 나쁘다의 취향 구분은 아니지만 전자는 반가움의 만남으로 후자는 형식적인 만남으로 여겨진다. 순전히 나의 취향 기준으로 말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만나는 범위가 좁아진다. 손절이 아닌 의도적 단절이라는 느낌마저 갖게 한다. 인적 네트워크뿐만이 아니라 익명의 대중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카페에 가더라도 타인과 단절의 의미로 떨어져 앉으려는 분위기와 비슷하리라.

 

은퇴하면 남는 게 시간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잉여의 시간이 생긴다는 것인데 그때도 시간 낭비라고 생각되는 만남이 있을까? 있을 것이다. 이것은 만남의 거리두기며 혼놀의 시작일 것이다. 마치 호퍼의 그림 세상처럼.


그래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코로나의 영향에 따른 그늘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칩거를 하면서 자신을 포함하여 주변을 살펴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자신의 취향을 생각하고, 네트워크를 생각하고, 평범한 일상을 그리워하고 있다. 전화위복의 순간이다. 이런 긍정의 생각이 가시기 전에 어서 코로나가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래도 이번 봄나들이는 건너뛰어야 할 것 같다.


아제베의 그림이야기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고 일상의 평화로움이 돌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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