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의 <피리부는 소년>
어제가 공휴일이었기에 월요일 같은 금요일의 출근 길이다. 휴일의 관성은 느슨한 발걸음으로 전이된다. 체력의 소진이다. 휴대폰에는 오늘의 불규칙 동사가 알림 문자로 도착한다. 애써 못 들은 체한다. 여유의 소진이다.
사무실 엘리베이터 스테인리스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본다. 콘트라포스토 자세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모습인데 권태가 느껴진다. 시선을 돌려 슬며시 불규칙 동사 알림 문자를 터치한다. 3단 변화가 동일한 burst-burst-burst다. 안심한다. 뇌의 활동 대신 옷매무새를 가다듬듯이 두 다리에 균형된 힘을 가해 자세를 곧추 세운다.
그림 하나가 떠오른다. 감흥이 이는 그림은 아니지만 서 있는 자세를 바르게 할 때 자주 연상하는 그림이다.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이다. 이 그림에서 관심 있게 보는 것은 화풍이나 비하인드 스토리가 아닌 소년의 서 있는 자세다.
소년은 한쪽 발에 중심을 두는 콘트라포스토 자세로 서있다. 서로 반대라는 의미를 지닌 콘트라포스토는 언밸런스의 느낌을 준다. 하지만 미술에서는 대칭적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자세라고 한다. 이현령비현령처럼 들리지만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보면 대칭적 조화를, 밀로의 비너스상을 보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포즈이긴 하다. 그렇지만 내가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취하면 다비드의 대칭적 조화를 찾아볼 수가 없다. 대칭적 조화란 어쩌면 예술의 착시 인지도 모르겠다.
IT 프로그래머로 30여 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등이 앞으로 굽었다. 이런 모습으로 일을 하는 나에게 아내의 염려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수시로 등을 곧게 펴라고 당부 하지만 직업병으로 달관하는 자세이기에 청에 가까운 아내의 간곡함은 독백으로 그치고 만다.
'세노비'라는 예명을 가진 수필가가 있다. 언뜻 들으면 고은 시인이 가사를 쓰고 양희은이 노래한 '세노야'를 떠올리게도 한다. '세노비'라는 뜻은 일본어의 조합인데, '세(せ)'는 사람의 등(背)을 뜻하고, '노비(のび)'는 편다(伸び)의 뜻이다. 일본어 번역실에 근무하는 커리어우먼의 직업적인 예명일 수 있지만 부르기도 예쁘고 뜻 자체 또한 마음에 드는 예명이다.
초인종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잠시 나르시시즘에 젖어 정자세에 만족하던 내 모습이 사라진다. 사무실을 거쳐 휴게실로 향한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휴게실에 들어서면 기분이 좋아진다. 은은히 풍기는 고소한 커피 향과 옥수수, 메밀, 보리, 현미, 둥굴레 5가지 곡물이 혼합된 오곡차의 구수함이 좋다. 좋아하는 주전부리는 아니지만 가지가지 색상의 귀여운 과일 캔디까지.
골프에서는 좋은 스윙을 위해 프리 샷 루틴 (Pre Shot Routine)을 한다. 정확한 샷을 위한 중요한 멘탈의 과정이다. 나는 내 하루의 프리 샷 루틴을 이곳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완성을 한다.
“예술은 폭발이야!” 라고 외쳤던 오카모토 타로(岡本太郎)의 자신감에 찬 모습처럼, 완성된 프리 샷 루틴의 정확한 궤도를 따라 나 또한 하루의 일정에 강한 임팩트를 시도한다. 오늘도 나는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지양(止揚)한다.
노동은 폭발이야! 살아간다는 것도.
▶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