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에 묻혀 밤이 깊어지면 내 곁으로 조용히 찾아드는 친구가 있다. 무언의 가스파르다. 가스파르란 보물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나에게는 천사의 눈물이라는 더치커피, 더블린의 정취가 느껴지는 기네스맥주, 내 삶의 오아시스 음악이 감성의 보물을 지켜주는 것들이다.
학창 시절, 심야 음악프로는 학습에 집중력을 빼앗는 밤의 요정이었다. 언젠가부터는 커피와 맥주까지 곁들여 문학까지 가세하여 밤을 즐기다 보니 새벽 2시쯤에 수면에 든다.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밤의 요정과의 인연은 두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대를 다니는 딸아이는 밤을 지새우며 그림을 그린다. 연극영화과에 다니는 아들은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며 드라마 모니터링한답시고 제 방에서 밤새 TV를 본다. 서울의 딸과 광주의 나와 아들은 자정이 되면 SNS 문자 러시가 시작된다. 우리 세 명은 자정이 초저녁인 셈인데, 병원에 새벽 출근하는 아내만 홀로 일찍 잠이 든다.
밤의 미학을 빛나게 하는 음악은 보석처럼 아름답게 때론 우울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오늘 밤에 듣고 싶은 음악은 조용한 피아노곡이다. 리스트의 순례 소곡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속의 ‘르 말 드 페이’를 검색한다. 건반의 순례자라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연주로 감상하고 싶었지만 유튜브에서 검색이 안 된다. 대신 박민규 소설 제목이 떠올라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백건우 연주로 감상했다.
음악 평론가에 의하면 모리스 라벨의 연주를 가장 멋들어지게 소화하는 피아니스트를 꼽는 데는 백건우를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밤의 가스파르’ 전곡을 세계 최초로 연주하기도 했던 피아니스트도 백건우였다. 하지만 이 곡은 비르투오소적 연주가 강해서인지 내 취향의 음악은 아니다.
밤의 가스파르의 세 곡 중의 첫 번째 곡의 제목에도 뭔가의 거부감이 있다. 물의 요정을 ‘언딘(Undine)’이라고 하는데, 요즘 우리 사회의 분열을 일삼는 예민한 뉴스의 배경이 된 느낌이 들어서다. 물의 요정을 들으려면 차라리 앙드레 가뇽의 ‘언딘’을 조용히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