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동네 어귀에 활짝 핀 벚꽃 길을 따라 아침 산책을 나섰다. 장범준의 미성이 돋보이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을 허밍으로 흘리며 아버지 산소가 있는 저수지에 이르렀다. 숙녀 몇몇이 짝을 이뤄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나이트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인근 종합병원 간호사들이리라.
나 홀로 유유자적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대문 앞에는 오늘도 동백이 지고 있다. 화사한 벚꽃의 갬성을 담고 와서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낙화의 애처로움이 인다. 싸리 빗자루를 가져와 다독이듯이 동백꽃을 쓸어 담는다. 처연한 느낌은 들지만 쓸쓸해 보이지는 않는다. 떨어지는 마지막까지 붉은 꽃의 자태를 보여줘서일 것이다.
싸리빗질을 마치고 돌아선다. 한쪽으로 자동차에 바퀴에 짓밟힌 동백꽃의 흔적이 보인다. 때 이른 선운사 동백꽃에는 막걸릿집의 목이 쉰 육자배기라도 남았다고 했지만, 짓밟힌 검은 흔적의 동백꽃에는 어떤 아픔과 미련도 남아있지 않다. 한때의 열정을 붉게 불태우고 남은 재처럼 말이다.
벚꽃은 피고 동백은 진다.
피는 꽃에 기뻐하고 지는 꽃에 슬퍼한다고 해도 피는 꽃도 한때이고 지는 꽃도 한때이다. 나 또한 피는 꽃에서 지는 꽃으로 세월 속에 묻혀가고 있지만 꼭 그렇게 서러운 것만은 아니다. 공격형 선수에서 수비형 선수로 보직 변경을 했을 따름이다. 포지션에 따라 역할이 있고 역할에 따라 자기만족에 따른 행복이 있다. 강물이 흐른 듯한 세월의 흐름에 선발투수가 릴리프투수가 되고 공격형 스트라이커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바뀌는 과정이다.
나도 이제는 공격형에서 수비형으로 바뀌었다. 세월 앞에 현실을 직시하고 지키는 데 중점을 두는 나날이다. 수비형이 되고부터는 최저시급 정도의 일을 한다. 부족분은 공격형 선수 때 흘렸던 땀을 연금으로 환산하여 메운다. 공격형 선수 때의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할지언정 나를 향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화려한 생활은 아니지만 한 템포 쉬어가는 평온함이 좋다.
점심을 먹고 다시금 벚꽃길로 들어선다. 흐드러진 벚꽃길로 시골버스가 지나간다. 꽃비를 맞으며 유유히 사라지는 버스의 뒤꽁무니를 유심히 바라본다. 새삼스럽게 웰다잉을 생각하게 한다. 벚꽃처럼 화려하게 살지는 못했으나 앞으로는 동백꽃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붉은 꽃의 자태를 지니다 한 순간에 똑떨어져 사라지는 동백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