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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Nov 13. 2022

마지막 고구마를 캐며

윤동주의 별 하나하나에는 추억과 쓸쓸함이 깃들어 있다. 고향을 떠나 온 부끄러움도 있다. 그 부끄러움 속에는 어머니가 있다. 그의 시 <별 헤는 밤>에 나오는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라는 시구를 볼 때마다 나도 어머니를 생각한다.         


유교적 전통과 윤리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부모에게 잘해야 한다는 건 팩트이다. 특히 어머니에게 잘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어머니 앞에 서면 표정과 말투가 왜 마음과는 다르게 표출되는지 모르겠다. 무뚝뚝한 말투가 백뮤직처럼 깔리니 말이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다녀와 아내와 함께 시골 외갓집에 인사를 갔었다. 당시 거동이 불편한 외할머니 연세가 99세였기에 우리의 결혼을 인지하지 못할 줄 알았다. 외할머니께 절을 올리고 아내를 소개하니 당신의 손을 나에게 내민다. 그리고선 “이 손으로 너를 받았어.”라며 나의 탄생을 아내에게 이야기 했다. 그해 가을 외할머니는 천수를 다하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외할머니의 기억력에 감탄을 하고 28년이 흘렀다. 이달이 가고 12월이 지나면 외할머니의 막내딸도 99세가 된다. 세월이 유수와 같이 빠르다.     



최근 들어 기억력 감퇴가 가속되는 어머니를 위해 치매 검사를 받았다. 치매 초기 증상이라는 판정을 받고 광주로 모셔와 장기요양등급 신청을 했다. 아직 화장실은 혼자 다닐 정도이기에 등급을 받으면 텃밭일은 잊고 주간보호시설에라도 다니게 할 계획이다.     


장기요양 공단의 방문 실사를 기다리는데 어머니는 자꾸만 시골에 내려가자고 했다. 텃밭에 심어 놓은 고구마를 캐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수확량도 많지 않을 것이니 그냥 포기하자고 해도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방문 실사를 연기하고 시골집으로 내려갔다. 대신 더 이상 텃밭에 작물을 심지 않기로 단단히 약속을 했다. 마지막 수확일 거라는 상징성 때문에 서울에서 여동생도 합류해 고구마를 함께 캐기로 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다. 들깨와 깻잎이 같은 줄기에서 자란다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가끔씩 시골집에 머물긴 해도 텃밭에 물을 줄 정도의 관심이었고, 텃밭은 어머니의 소일거리 장소로만 여겼다. 간혹 수확해 놓은 작물이 있으면 그저 옮기는 작업 정도의 노동만 했다. 이번 어머니와 함께 하는 고구마 수확은 나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 될 것이다. 어머니의 건강 상태가 등속이 아닌 가속으로 퇴보하기에 더 이상 어머니 혼자만의 시골집 생활은 무리가 따르리라는 확신이 들어서다.     


여동생이 어머니를 따라 고구마를 캐기 위해 호미를 들고 텃밭으로 나간다. 나는 창고에서 가장 큰 괭이를 들고 텃밭으로 나간다. 내가 괭이로 밭을 파면 어머니와 여동생은 고구마를 양동이에 담게 하려는 심산이다. 텃밭에 들어서니 어머니는 이미 세숫대야 한 개분의 고구마를 캐고 있다. 어머니를 일어서게 하고 고구마 이랑 앞에 섰다. 괭이로 고구마 이랑을 내려찍을 태세를 하니 어머니가 기함할 듯이 놀라는 소리를 외친다. 그렇게 무지막지 내려찍으면 고구마가 전부 상한다는 것이다. 아뿔싸, 고구마는 밭 속 깊은 곳에서 자란 작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어이없는 표정에 다소 계면쩍어진 나는 여동생에게만 호미로 캐도 된다는 말만 전할 따름이었다.     





고구마는 나의 예상보다 훨씬 많이 수확되었다. 양동이 한 두 개 분량 정도로 예상했는데, 반가마니 정도 수확되었다. 마트에서 간단히 사 먹기만 했던 고구마를 직접 수확하고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중 하나는 수확량을 떠나 수확의 기쁨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고에 따른 원가와 가성비를 생각하면 애증의 양가감정이 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뒤처리가 끝나고 고구마를 삶았다. 해남 꿀고구마처럼 그렇게 달지는 않았으나 단것을 선호하지 않는 나의 입맛에는 평균 이상의 맛이었다. 여동생도 맛은 좋다고 했다. 모처럼 노동 후 휴식이라는 분위기도 한몫했을 것이다. 나와 여동생은 처음 고구마를 캐보았다는 경험을 무용담처럼 떠들며 맥주까지 곁들여 즐거운 수다를 나눴다. 그러다 문득 어머니의 표정을 보았다. 무표정의 얼굴이었다.            


어머니는 고구마를 먹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고구마가 정녕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에 목이 메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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