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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Apr 10. 2023

혼놀의 평온함 - 패스트푸드

평일엔 독서와 유튜브를 시청하느라 자정이 지난 2시쯤 수면에 든다. 주말엔 더 늦은 새벽녘에야 잠이 든다. 휴일엔 아점 시각까지 늦잠을 자기에 아내가 외출하여 혼자일 때가 있다. 혼밥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가끔 집 근처 맥도널드에 간다. 늦은 모닝커피와 간단한 아점 대용으로는 햄버거가 안성맞춤인데, 가성비 떨어지는 빵이 있는 카페보다는 맥도널드를 찾는 경우가 많다.     


맥도널드에 가는 이유는 백색소음과 익명의 대중성이다. 메이저 카페도 익명성은 보장되지만 백색소음 이상의 소음이 많다. 동네 카페는 주인이 나를 알아보기에 망설여진다. 한쪽 구석에 앉더라도 내부가 좁기에 나의 동선이 주인에게 포착된다. 이는 혼놀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로 작용한다. 내가 자주 가는 맥도널드는 익명성도 보장되고 손님이 많지 않은 이층에서는 백색소음도 적당하다. 자연스럽게 혼놀의 단골 장소가 되었다.  


한때 아침 식사로 삼 년 넘게 햄버거를 먹은 때가 있었다.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일본으로 직장을 옮겼을 때였다. 질리도록 먹었던 햄버거였기에 귀국하고부터는 한동안 기피 음식이 되었다. 이후 결혼을 하고 언젠가부터는 아침을 안 먹기에 햄버거는 이래저래 먼 옛날의 음식이 되고 말았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얼마간 맥도널드에 드나들긴 했다. 햄버거를 먹는 아이들을 보고도 전혀 구미가 당기질 않아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아이들과 어울렸다.     


두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만큼 세월이 흘렀다. 요즘 다시 패스트푸드가 나의 식욕을 돋운다. 야식이 생각나면 곧장 햄버거를 주문할 수 있도록 맥딜리버리 앱도 깔아 자동결제까지 연결해 놓았다.


패스트푸드를 자주 먹으면 건강에 안 좋다고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먹고 나서 탈이 나는 음식만 아니라면 자제하지 않고 먹는다. 두 번째 서른이 지나고부터는 장수보다는 당장의 취향에 우선하기 때문인데 나이 들어 좋은 점 중의 하나이다. 타인이 들으면 자기 합리화를 위한 객기라고 할지 모르겠다.      


오늘도 늦잠을 즐기고 일어나니 아내는 이미 외출하고 없었다. 샤워를 마치고 상쾌한 스킨로션을 바른다. 운동복을 입고 시민공원을 산책하고 서점에 들어선다. 신간을 살펴보는데 오랜만에 이향아 교수의 신간이 눈에 띈다. 옆에 놓여있는 이석원 작가와 이병율 작가의 책도 함께 집어 들었다. 세 권의 책을 들고 맥도널드에 들어선다.     



키오스크 앞에는 두 줄로 10여 명이 서있다. 나의 차례가 왔다. 나는 키오스크와 같은 화면 메뉴를 만드는 IT프로그래머이지만 내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급해진다. 조급하면 메뉴 찾는 게 서툴러진다. 오늘 아침도 그랬다. 서둘러 메뉴를 선택하다 보니 원하지도 않는 메뉴를 선택하고 말았다. 음료도 커피로 바꿔야 하는데 깜박했다. 취소를 하고 다시 원하는 메뉴로 재차 선택을 할까 했지만 뒷줄에 서있는 학생의 모습을 보고선 그냥 선택된 메뉴로 결제를 했다.     


내가 자주 먹는 메뉴는 불고기버거이다. 불고기버거를 자주 찾는 이유는 저렴한 가격(3,600원)도 한몫하지만 더 큰 이유는 크기가 작아 먹기가 편해서이다. 이름이 어려운 햄버거는 비싼 만큼 여러 가지 식재가 들어가기에 맛이나 영양가는 많겠지만 햄버거 크기가 너무 크다. 방금 선택한 메뉴도 이름이 어려워 기억을 할 수 없다. 한가운데는 대나무로 고정되었고 가장자리는 하얀 켄트지로 둘러싸여 있다. 입으로 베어 먹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감싸 먹어도 흘리기 일쑤이다. 원하는 햄버거도 아니고 크기 때문에 먹기도 힘들었지만 콜라와 함께 양껏 배를 채웠다. 테이블을 치우고 두 손을 씻고 와서 방금 구입한 서적을 펼친다.     


이향아 - “오늘이 꿈꾸던 그날인가”

이석원 - “순간을 믿어요”

이병률 -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 권씩 책을 펼쳐 목록과 프롤로그를 읽는다. 패스트푸드점에서의 평온한 혼놀의 시간이다. 커피 한 잔 추가를 해야겠다.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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