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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Sep 04. 2023

혼놀의 평온함 - 식사 취향

이번 주말도 시골집에서 지낸다. 엊그제 많은 비가 내렸기에 가방을 든 채 마당 뒤편부터 둘러보았다. 평소 마당 뒤편 담장 사이로 많은 물이 흐르기에 갖게 된 염려였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올봄에 만들었던 시멘트 고랑으로 물은 순조롭게 흐르고 있었다.       


시골집 주변으로 피해 없음을 인지하고 부엌으로 들어섰다. 가져온 식료품을 보관하기 위해 냉장실 문을 열었다. 냉기가 전혀 없는 느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어서 냉동실 문을 여니 얼음이 녹은 물이 흘러나왔다. 냉장고의 패널 메뉴에는 분명 가동 중이었으나 냉동과 냉장이 안 되는 상태였다. 고장이었다.     


A/S 센터에 출장서비스를 신청했다. 출장 예약이 밀려 2주일 후에나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할 수 없이 읍내 마트에서 아이스박스에 넣을 각얼음과 인스턴트 식품류를 사 왔다. 아이스박스에 각얼음을 넣어 음식을 보관하던 시절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이번 주말 식사는 낱개 포장의 소시지와 양념김 그리고 단무지이다. 뜨거운 물을 넣어 만드는 컵된장국을 먹기도 한다. 나의 식사 취향에 걸맞은(?) 반찬인데 전혀 불만이 없다.     


나의 음식 취향을 생각한다. 나는 남자로서는 자랑스럽지 않은 초딩 입맛을 지녔다. 생선 비린네를 싫어하고 매운 음식을 기피한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땀을 많이 흘리는 ‘식이성 미각 다한증’을 갖고 있어서이다. 그렇다 보니 어려서부터 습관적으로 계란, 소시지, 단무지 같은 고춧가루가 없는 음식을 먹어 왔다. 매운 김치는 한입에 넣는 경우가 없이 젓가락으로 찢어 먹는다. 타인의 눈으로는 깨작깨작 먹는 소식의 스타일인 것이다. 나로서는 사회생활하는데 애로사항이 많았을 수밖에.

    


맵지 않아 좋아하는 반찬 중에 단무지가 있다. 학창 시절 국물이 새지 않아 도시락 반찬으로 자주 쌌던 단무지였다. 단무지의 오리지널 이름은 다꾸앙이었기에 어렴풋이 일본의 음식으로 여겼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일본의 스님 중에 선식으로 즐겨 먹던 다꾸앙(澤庵,たくあん;1573∼1645)스님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대대로 이어오는 전통 일본 식당에 가면 다꾸앙 세 쪽을 준다. 다꾸앙 스님이 밥 한 공기에 다꾸앙 세 쪽으로 식사한 것을 기억해서일 것이다.      


처음 일본에 갔을 때였다. 기숙사에서 자취를 했지만 일본의 정통 단무지를 먹어야겠다는 기대감에 식당을 찾았다. 하지만 나의 기대에 미치질 못했다. 단무지에 익숙한 색상이었던 노란색이 아니었다. 색소와 단맛 없이 무를 그냥 소금에 절였다는 느낌에 단무지를 보는 순간 식감부터 떨어졌다. 나의 입맛에는 정통 다꾸앙보다 우리 입맛에 익숙한 노란 단무지가 훨씬 맛이 좋다.       


시골집에 오면 읍내에 사는 누님이 반찬을 만들어다 준다. 나의 음식 취향을 잘 알고 있건만 항시 푸짐하게 반찬을 가져온다. 주변에 사람이 없으니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마음껏 먹으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나는 매번 반찬을 남기고 버린다. 초딩입맛 이전에 소식(小食)체질 이어서이다.


         


나의 소식(小食)에는 검소함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매운 음식을 기피하다 보니 편식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소식체질이 된 것이다. 다만 소식에 대해 깊이 생각했던 계기는 있었다. 나의 간결(?), 단순 식사 철학은 가나안 농군학교를 다녀온 후였다. 가나안 농군학교 설립자인 김용기 교장의 한 장의 흑백 사진을 보며 생각에 잠긴 적이 있었다. 고구마와 김치로 식사를 하는 사진이었는데, 식사 준비하는 시간과 음식 낭비를 줄이자며 생전에 간단한 식사 습관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나에게는 공감되는 식사 철학이었다.     


오늘도 단무지에 김, 소시지로 식사를 한다. 준비 시간도 짧지만 설거지 시간도 짧다. 혼놀 식사의 평온함이다.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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