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의 고통
모니터 옆에서 연신 울려대는 전화벨, 8시 반부터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영업사원들의 카톡, 분명 다음 주까지 나오기로 한 차의 출고가 늦어질 것 같다는 내용의 메신저, 어젯밤 다툰 뒤로 계속해서 연락이 없는 여자친구.
복잡한 머리를 겨우 회전시켜 가며 눈앞에 산적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하고 있자니 에어컨이 빵빵한 사무실임에도 불구하고 식은땀이 흘렀다.
"예. 예. 그거 저번에 말씀하신 대로 했어요. 예. 팀장(영업사원)님 죄송한데 지금 일이 너무 밀려서요. 제가 그건 확인해서 잘 처리하고 조금만 있다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무시하는 게 아니라요. 지금,...."
욕지거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다.
'씨발새끼가 진짜 나잇값도 못하고 또 이 지랄이네...' 입으론 차마 튀어나지 못한 말을 속으로 하며 예의라고는 엄마 뱃속에 두고 온 듯한 영업사원의 말에 '죄송하다'라고 말하는 나.. 최악이다.
겨우 통화를 끝내고 부재중이 찍혀있는 내선전화로 다시 전화를 건다. 상대는 본사 차량 출고 담당자. 공장 파업으로 차가 2주 정도 밀릴 것 같다고 한다. 해당 차는 고객이 다음 주에 나오지 않으면 계약을 무르겠다고 한 차로 주 과장님(또 다른 영업사원)이 무조건 기간을 맞춰달라고 했던 그 건이다. 계약이 날아가는 순간 120만원 정도가 날아가기에 나 또한 신경을 쓰고 있던 건인데, 공장 파업을 대체 내가 무슨 수로 막겠는가... 출고 담당자에게 어떻게 안 되겠냐고 물었으나, 그 담당자도 뾰족한 수가 없다. 공장이 멈췄는데 담당자라고 뭘 어쩌겠는가.
전화를 끊고 잠깐 한숨을 쉬었다. 옆에서 조용히 통화를 듣고 있던 팀장(과장)이 씨익 웃으며, "으이그, 또 뭐 잘못했냐? ㅉㅉ"라며 불난 집에 휘발유를 들이붓는다. 나의 직속상사인 이 인간은 내가 지금까지 접점을 가져왔던 사람 중에 가장 예의 없고 멍청한 축에 드는 인간으로, 내가 입사한 후 더러운 영업사원은 전부 나한테 몰아넣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런 식으로 꼽을 주며 자신을 과시하는 스타일이었다.
문제는 과시를 했으면 해결도 해줘야 정상인데, 그렇게 염장만 지르고 그냥 넘어간다는 것.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영업사원들의 나에 대한 무례한 태도도 신입사원이었던 나를 교육시켜야 한다는 명목으로 이 팀장이 주도했던 것이었다.
직장은 확실히 학교와는 달랐다. 대학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렇게 예의 없거나 불편한 인간들은 그저 피하면 됐다. 간혹 교수님과 조모임이라는 어려움이 올 때도 있었지만 길어야 4개월이면 끝이 났으니 참을만했다. 돌아보니 돈은 좀 부족했지만 참 자유롭고 쾌적한 삶이었다.
그러나 '밥벌이'는 달랐다. 김훈이나 김연수와 작가들이 왜 그렇게 '밥벌이'에 대한 숙명에 대해 심오한 글을 적었는지 알 것만 같았다. 대학 때처럼 내가 원한다고 쉽게 '끝'을 맺을 수 없었고, 벗어나고 싶어도 짊어져야 할 것들이 많았다.
"야이~ 씨발새끼야!!!"
회사 문을 열어젖히며 시원한 욕지거리가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아까 통화했던 그 '팀장(영업사원)'놈이다. 그 인간은 나와 팀장(과장)의 앞에 서더니 나의 싸가지 없음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팀장(과장)놈은 사뭇 진지하게 그 이야기를 듣더니 다 알겠다는 웃음을 씨익 지으며 "담배나 한 대 피러 가게"라고 말하며 팀장(영업사원)을 데리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한참 후 팀장(영업사원)이 먼저 내려왔고 내게 아까 하던 이야기를 또 한 번 반복하기 시작했다. 순간 꼭지가 돌았고 10살 이상 차이 나는 인간도 아닌 팀장(영업사원) 놈에게 조목조목 반박을 하기 시작했다. 연신 욕지거리를 하던 팀장(영업사원)놈은 열이 뻗쳤는지 쥐고 있던 캐비닛 열쇠를 내게 던졌고,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씩씩대며 회사를 벗어났다.
몸이 떨려왔다. 분노가 단전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발생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겨우겨우 심호흡을 하고 있는 와중 팀장(과장)놈이 들어오더니 나를 회의실로 불렀다.
"야, 니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 너 이제 어떡할 거야?, 실적이랑 떨어지면 어떡할 거냐고?"
아주 잠시나마 '나를 위로해 주려는 건가?'라고 생각했던 내 머리를 망치로 찍고 싶었다. 이 자식이 어떤 놈이데 그럼 그렇지, 이후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말도 안 되는 거 가지고 트집 잡고 자꾸 전화 길게 하니까 잘 처리하고 다시 연락드린다고 한 게 잘못인가요?, 잘못은 그 팀장이 했는데 제가 왜 이렇게 욕먹고 실적까지 책임져야 하죠?"
지금껏 조용히 일하던 내가 갑자기 그렇게 말해서였을까? 팀장(과장)놈은 당황하더니 갑자기 앉아보라며 그래도 우리가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며 아까와는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내가 당연히 쫄아서 죄송하다고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자 갑자기 할 말이 없어진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전화기는 계속 울려댔고 녀석은 일단 급한 전화부터 받아야겠다며 먼저 회의실을 나섰다.
덩그러니 회의실에 남겨진 나. 내 속의 분은 아직 절반이 채 풀리지 않았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오후 풍경은 지독히도 평화로웠다. '하... 다 때려치우고 싶다.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전화벨이 힘차게 울렸다. 주 과장의 전화다. '받아야겠지?, 그래 받자.' 통화버튼을 누르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회의실을 나섰다.
"여보세요, 예 과장님.. 그 저번에 말했던 그 차 있잖아요. 다음 주엔 파업 때문에 어렵다고 하네요... 예? 아 왜 욕을 하고 그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