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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fka Jun 22. 2023

교육과 맥락적 사고

  공정 무역이란 개발 도상국 농장과 노동자에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자는 운동이다. 그런데 이 운동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이 누구일까? 안타깝게도 개발 도상국 농장과 노동자 들이다. 비용이 싸지 않다면 굳이 개발 도상국에서 공장을 운영할 필요가 없다보니 기업들이 철수한 탓이다. 이렇듯 현실에서는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며, 모순되거나 대립되는 요소도 상황에 따라 균형있게 양립할 수 있다.

     


  신교육 사회학의 공로로 가정 배경이 학생의 학업 성취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학력에 따라 소득, 지위, 명예 등 사회적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배분하는 것이 더 이상 공정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학생의 학력을 측정하는 평가에서 학생의 성장을 지원하는 평가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평가가 학생의 성장에 기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극히 타당해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가정 요인에 따른 교육 불평등을 더욱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측정하기 힘든 성장을 강조하면서 지식을 소홀히 하다 보니, 학교 외에는 지식을 얻을 곳이 없는 저소득 가정 아이들이 더욱 피해를 입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 여러 나라의 교육을 경험하고 비교 분석한 아만다 리플리는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며 표준화 시험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정기적인 표준화 시험을 보는 나라일수록 더 공정하고 빈부 간 학습 결과 차이가 적었다. 역사적으로 엄격함과 목적의식이 부족한 시험을 보는 미국에서조차 보편적인 표준화 시험을 보던 기간에는 흑인계와 라틴계 학생들의 읽기/독해 능력 및 수학 점수가 올라갔었다.  



  또 진보적인 교육자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는 사토 마나부도 '교육개혁을 디자인 한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인물 중시 교육을 비판한 바 있다.



  일본 역사를 되돌아봐도 학력주의를 가장 급진적으로 비판하고 학력보다 인물 중시의 입시를 주장한 것은 파시즘 정권이었다. 한국에서도 고교입시를 폐지하고 학원이나 과외교습 등을 법적으로 금지한 것은 박정희 군사정권이었다. 공정한 경쟁에 참가하는 시민적인 자유를 부정하고 획일적인 평준화를 달성하는 것은 전체주의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PISA시험 결과를 살펴보면 과정 중심 평가가 대대적으로 도입된 2014년 이후로 읽기, 수학, 과학 전 영역에서 1, 2수준(가장 낮은 수준) 학생의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대와 달리 새로운 평가 방법이 학생들을 전혀 성장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하는 평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참으로 아름다운 이상을 담고 있다. 그러나 과정 중심 평가가 정말 그 이상을 실현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많은 학교가 표준화 평가 문항 가운데 가장 단순하고 변별력이 낮은 문항을 과정 중심 평가에 사용하고 있으며, 다인수 학급에서 의미 있는 피드백을 해준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일은 맥락적이다. 그런데 어떻게 운영되는지와 상관없이 과정 중심 평가는 옳고 표준화 평가는 그르다는 편견이 교육에서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지식 중심의 무한 경쟁에 다시 뛰어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무엇이 학생의 성장에 더 도움이 되는지 다시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다. 맥락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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