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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과 낭만 사이 : 포르투갈 포르투

by 구은서


리스본에서 포르투 이동은 기차를 이용했다. 저녁 혼자 먹기 심심한데.. 싶어서 기차 안에서 유랑 카페 동행 글을 보고 톡을 보내봤다. 인사를 하자마자 나이랑 성별을 물어보길래, 꼭 또래를 찾고싶은건가 싶어 정확하게 출생연도를 밝혔다. 알고보니 나랑 2살 아래 여성이었다.



포르투에 도착하자마자 만나서 저녁을 먹었다. 만나자마자 "헛, 저희 그라나다 호스텔에서 뵙지 않았어요?" 하셨다. 맞았다. 마지막 날 짐 챙기고 있을 때 방에 들어오신 한국인.. 그 분이었다. 별 다른 이야기는 않고 정수기 사용법(페달을 밟는 거였음)을 알려준 적이 있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역시 착하게 살고 볼 일이다. 톡을 할 때는 내가 보내기 이전에 다른 사람이랑 대화를 하다가 그가 나이 묻더니 나가버린 경험이 있어서 나이부터 여쭤보게 됐다며... 그럴 수 있지 싶었다. 아무튼 저녁 먹으며 여행 이야기를 하고 다음 날 일몰 볼 때 다시 만나기로 했다.


여기서도 중심이랑은 15분정도 거리인 에어비앤비를 구했다. 엘리베이터 없는 오래된 건물의 3층 방이었다. 비대면 체크인이었고 호스트 아저씨가 방에 먼저 들어가있으면 한 시간 뒤에 캐리어 옮겨주겠다고 해서.. 고민하다가 그냥 기다렸다. 방은 아늑하고 안에 화장실도 있어서 편하게 쓸 수 있었다. 에어비앤비 사진에 있던 예쁜 건물 뷰를 기대하면서 커튼을 젖혀봤는데 조금... 기괴했다. 폐가인가? 한 때는 아름다운 건축이었겠으나 지금은 방치되는 듯한 무언가... 흉해서 커텐을 완전히 쳐버렸다. 이걸 아름다운 뷰라고 쓰다니 양심 뭐냐고....

치약을 이전 숙소에 놔두고 왔고 밤 10시가 넘어서 근처 작은 슈퍼에서 다시 사야했는데 어둡고 조용해서 사러 나가기가 무서웠다. 그래서 냅다 뛰어갔다 왔다. 더럽게 비쌌다.



다음 날 리스본에서 마지막 날 크게 좋지 않아서였는지, 숙소 근처의 무서운 골목을 경험해서인지. 아주아주 늦게 일어나 게으르게 움직였다. 한쪽 코가 완전히 꽉 막히고 다른 쪽도 막힐듯 안막힐듯 하고 있었다. 내 정신도 어딘가가 막힌 듯 했다. 여행을 떠나온지 2주째. 장기 여행은 더이상 나랑 안맞는걸까? 계획해둔 로마까지는 한 주가 더 남았는데.. 그토록 꿈꾸었던 순간에 있는 내가 이렇게 무기력하다니. 많이 이동하지 말고 이탈리아만 갈걸 그랬나. 씻으며 별별 생각을 다 했다. 나가기 싫었지만.. 그래도 나가야지 어떡해.


나가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걷다보니 기분은 꽤 나아졌다. 아줄레주가 아름다운 카르모 성당 근처에서는 거의 10분에 한번은 코를 풀어야해서 가지고 있는 휴지가 다 동날거같아 걱정됐다. 다행히 어딘가 즈음부터 조금씩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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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 중심가에서 강 쪽으로 걸었다. 왜 사람들이 포르투 포르투 하는지, 강이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더더욱 느꼈다. 내려가서 강가를 걸었다. 갈수록 시야에 보이는 사람들이 엄청 늘었고 야외에서 식사하는 테이블들도 많았다. 버스킹 연주가 들려오고 강 양옆으로 가파른 지형의 땅 사이를 잇는 동루이스 다리가 보였다. 유유히 다니는 배들과 파아란 하늘과 구름과 강가의 집들..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설마 다리를 건너려면 저 높은 곳 위로 올라가야 하는건가? 하며 걷다보니 낮은 다리가 있어서 차도 다니고 사람들도 걸어가고 있었다. 강 건너편, 뒤이어 모루정원까지 천천히 걸으며 풍경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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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루정원에서 출출하기도 하고 내 최애 나타를 안먹은지 좀 된거같은(사실 하루 밖에 안지난) 느낌이 들어서 나타를 먹으러 향했다. 해서 계속 걸음... 골목골목 조용한 길을 걷다가 나타 집 근처 쯤 되니 완전 번화가였다.


나타랑 커피 한잔으로 출출함을 달래준 뒤 볼량시장이 바로 옆에 있어서 가보았다. 왁자지껄 활발한 시장보다는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으로 정돈된 시장이었다. 농수산물, 빵, 고기, 꽃, 파스타, 정어리통조림(대체 왜 유명... 맛있나요), 주얼리 등등 다양한 카테고리가 있었다. 간단한 길거리 음식을 테이크아웃 할 수 있는 곳 몇개가 있었다. 시장 음식을 지나칠 순 없다.. 커다란 치즈 위에 파스타를 조리해서 주는 집이 있었는데 웨이팅이 심해서 패스하고 말았다. 고민하다가 veggie bite라고 써진.. 한국어로는 뭐랄까 야채주먹(밥은 아니라서 밥 생략)을 샀다.



결제할 때 야채주먹 파는 애가 나한테 물었다.

"너 오늘 처음 오는거 아니지? 본거같은데"

"아닌데 ?.?"

"아 미안 착각했나봐. 너네 쌍둥이 아닌가? 전에 온 애가 나쁜 쪽이고 너는 좋은 쪽"


위기 모면 능력이 훌륭한 친구였다. 야채주먹도 호박이랑 파가 들어간 게 의외로 맛있었고 배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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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시간보다 조금 일찍 다시 모루 정원으로 갔다. 그새 사람들이 진짜 많아져있었다. 그래도 간간히 빈 공간이 많아서 위로 올라가서 명당에 돗자리를 펼 수 있었다. 버스킹 하는 사람이 정면의 저 아래에서 기타를 치고 있었다. 저 멀리 강에서 유유히 지나가는 유람선, 동루이스 다리, 아직은 파란 하늘도 잘 보였다. 쉴새없이 음악을 들으며 멍 때렸다.


일몰 시간 즈음 이쁜 핑크빛 하늘을 기대했는데 간간히 드리운 구름에 가린건지 잘 안보였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드문 시간이었다. 같이 일몰 보자고 했던 동행은 거의 딱 해질 무렵에 왔다. 그녀는 일몰에 맞는 감성 음악을 듣고싶다며 에어팟을 끼고 감상 타임을 갖자고 했다. 그 때쯤 내 앞에서 하던 버스킹이 끝나고 옆쪽에서 굉장히 힙하고 시끄러운 음악을 틀고 있어서 귀를 막고싶기도 했다. 음악 들을 생각을 왜 못했을까? 나중에 그 음악을 들으면 여행 생각도 나고 좋을텐데. 스텔라 장의 'L’Amour, Les Baguettes, Paris' 를 듣기 시작했다. (포르투에서 파리에 대한 노래를 들었... 그 때는 그런 생각도 안들고 생각난 멜로디였다.) 잔잔하고 향수와 몽환이 한 스푼 섞인 노래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조그만 위로가 되었다. 무기력하고 고생스러웠던 시간들도 있었지만 이제 이 곳에서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지금도 눈 감고 그 곡을 들으면 모루정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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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를 떠나던 날. 아침에 NomadHer 플랫폼으로 "아직 포르투에 있나요?" 하고 메시지가 왔다. 점심 먹고 떠날 예정이라 가능하면 함께하자고 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한국인들이 좋아하더라며 추천해준 식당에서 만났다. 그녀는 영국에 사는데 원래는 베네수엘라 출신이라고 했다. 곧잘 서로 웃으며 금방 편안함을 느꼈다. 처음에 영어 발음이 알아듣기 어려워서 들어본 적 없는 영국 사투리인줄 알았다. 70퍼센트 정도 알아들은 것 같다.


내가 영국에선 무슨일 하냐구 물었다. 고객들이 이메일로 불평하는 것에 답장을 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딱히 CS팀이라고 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표현함) 들으면 바로 아는 여행자 플랫폼이라 내가 반가워하니 "으앗 아무것도 말하지마!" 하며 손사래를 쳤다. 난 불평 없는데..ㅋㅋ


그녀는 연간 휴가가 한달 이상으로 길었다.(우리나라는 법정 휴가 15일이라고 하니 그거밖에 없냐고 했다) 그걸로 충분히 유럽여행을 다니는 데다가 원격 근무도 일부 할 수 있어서 여기서도 일을 좀 한다고 했다. 엄청 부러운 근무조건이다. 내가 개발자라고 하니 영국에 취업하면 돈 엄청 받을거라고, 렌트가 비싸지만 충분히 감당할거라고 말해줬다.


"하지만 전 영국이 싫어요.. 돈 더 받으면 넘 좋을 거 같긴한데.. IT회사들은 다 런던에 있고 런던에 갈때마다 힘들었어요." 라고 하니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서는 스페인에 살면서 한달에 두 번 정도만 본사를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저가항공 타고 1-2시간이면 다른 나라 도착해있는데, 못할 이유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이렇게 유연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싶다.



나는 어디에서 사는게 좋을까?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2주의 스페인, 포르투갈은 여행자인 나에게 충분히 다양한 도파민을 주었다. 하지만 여기에 살아야한다고 생각해보면 아찔했다.

말이 안 통하는거야 배우면 금방 늘거라 믿지만, 숙소 근처 거리가 뭔가 더럽거나 낡아보여서 낮에는 찌푸려지고 밤에는 무서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주요 명소와 중심가의 잘꾸며진 거리들을 제외하면 늘 안 좋은 면들도 함께 보였다. 중심가와 떨어진 에어비앤비를 많이 이용하다보니 더욱 잘 느껴졌다. 사실 그게 내 목적이었다. 마음 한켠에 '유럽에서 사는 건 어떨까' 의 호기심이 늘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 외에 생수를 사 먹지않으면 수돗물을 마셔야 한다거나 유료 화장실이 존재한다는 것 같은.. 자잘하지만 불편한 이질적인 요소들, 비싸고 맛없는 식당들까지 생각해보면 스페인, 포르투갈에 여행 이상으로 산다는 상상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모든 단점을 상쇄할 만큼 풍경과 문화가 내 취향이지는 않았나보다.


안녕. 다시 여행자로 돌아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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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를 다시 간다면


명소

- 동 루이스 다리: 다리를 다섯번 넘게 걸어다녔지만 건널 때마다 도파민 뿜뿜이었다.

- 모루정원: 일몰 :)

- 세하 두 필라르 수도원 옆 전망대: 전망 자체는 여기가 가장 좋다. 앉을 곳은 없다.

- 볼량 시장


맛집

- Fábrica da Nata : 나타 맛집 여기도 있다

- Kuji Coffee : 따뜻한 분위기, 커피맛, 깔끔함을 다 갖춘.. 작업하기도 좋을 것 같은 카페


스텔라 장 - 'L’Amour, Les Baguettes, Paris'

https://youtu.be/XtYGk-kvWP0?si=NbW5CglRElIJXH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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