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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나타 먹으며 내 페이스 찾기 : 포르투갈 리스본

by 구은서


짠순이인 나는 왠만하면 택시나 우버를 잘 안타려고 하는 편인데, 리스본은 돌바닥 언덕길이 많다는 얘기를 읽고 공항에서 숙소까지 우버로 이동했다. 리스본에서 어딜 가야하는 지도 잘 모른 채 일단 가는 중이어서 (저런..) 우버 아저씨한테 당신이 리스본에서 젤 좋아하는 곳은 어디인가요? 하고 물어봤더니 코메르시우 광장이라고 해서 거길 먼저 가기로 맘먹었다.


말이 하나도 안통했던 세비야 숙소랑 다르게 리스본의 호스트 사라는 유창한 영어로 나를 맞아주었다. 리스본에서 어디갈지 정했냐고 묻길래 "아무것도 몰라요.." 하니까 나를 식탁에 앉히고 물 한컵을 준 다음에 지도를 펼치고 장장 40분을 설명해줬다. 퀵 리스본 인트로! 동네 맛집, 여러 구역 특징, 가볼만한 곳들, 어디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할수있는지, 등등 소상히 안내해주셨다. 따로 메시지로 구글 지도 링크도 보내줘서 수시로 찾아볼 수 있었다. 감동과 감사함이 밀려왔다.. 그냥 이분이 알려준 곳들 다니다보면 만 3일이 금방 지나가겠다 싶었다.




다만 숙소의 위치는 중심가랑은 조금 떨어져있어서 늘 트램이나 버스를 타야 했다. 트램을 타려는데 교통카드 기계나 티켓 팔만한 상점이 전혀 안보였다. 트램을 기다리는 사람들 중 어떤 아저씨한테 포르투갈어로 구글번역기를 보여줬더니, 영어로 하라고 하셨다. 알고보니 여행 온 독일인이었다. 그가 교통카드는 잘 모르겠고 트램 들어가서 티켓 살거라고 하길래 가볍게 이야기하면서 같이 기다렸다. 다행히 트램에서 컨택트리스 카드 지원이 돼서 신한카드 찍고 해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찡긴 채로 앞쪽에 서게 된 바람에 트램 기사가 트램을 어떻게 조작하는지도 훤히 다 보였다. 독일 아저씨가 어린 아이처럼 신난 표정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으셨다. 미친 경사의 언덕을 내려가는데... 신기하기도 한데... 뭔가 삐걱대고 오래되어 보여서 무서웠다. 지난 9월의 푸니쿨라 사고를 떠올리며 나도 죽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라가 사고난 푸니쿨라랑 일반 트램은 다르다고 말하긴 했지만) 옆의 독일 아저씨는 내 표정은 전혀 보지 못하는 듯 신나게 나에게 소감을 이야기하고... 혼란의 트램을 15분 정도 타고 아마도 가장 낮은 지대를 지날 즈음 내렸다. 코메르시우 광장이 금방 나타났다.



광장은 사진으로 볼 때보다 훨씬 넓고 환했다. 거대한 공간 한가운데에서 비눗방울 아저씨가 쉼 없이 비눗방울을 날리고 아이들은 팔랑팔랑 쫓아 뛰어다녔다. 바람이 불 때마다 테주 강에서 나는 짭조름한 냄새가 스쳤다. 강이라고 알고있었지만 내 눈과 코에는 바다였다. 강 쪽 전경은 솔직히 생각보다 크게 감동은 없었지만, 그 반대편 방향으로 거대한 아치 문을 통과해 메인 스트리트로 이어지는 풍경은 '리스본에 어서오세요- ' 하는 환영의 느낌. 상점과 식당들이 줄지어 서 있고, 나란히 여행객들도 많다. 띄엄띄엄 나는 밤 굽는 냄새와 피어오르는 연기. 맛있어보이는 빵집도 눈에 띈다.


IMG_1421.JPG?type=w1 코메르시우 광장(Praça do Comércio)


리스본에 사실 나타를 먹으러 갔다고 해도 무방할만큼 나타 맛집만 알고 리스본에 도착했었다. 여러 후기들을 보고 메인 스트릿에서 가장 기대되는 곳을 찾았다. 이름은 'Fábrica da Nata'. 입구에서부터 투명한 창으로 나타를 열심히 만들고있는게 다 보여서 더더욱 신뢰로웠다. 생긴건 서울에서 파는 에그타르트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게 정말 그렇게 맛있을까? 테이크아웃해서 일단 밖으로 나왔다. 앉아서 먹을 곳을 찾다가 우연히 호시우 광장안으로 들어가서 한입 베어물었다. 콰작 소리가 나는 바삭한 겉면으로 시작해 오, 내가 딱 좋아하는 농도와 맛과 색의 그 커스터드 크림이 느껴졌다. 너무너무 맛있었다.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맛!! 포르투갈에 머무는 동안은 꼭 매일매일 먹기로 결심했다. (이후 온갖 나타 맛집을 돌아다니며 맛보았는데 여기가 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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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트램을 타고 돌아오면서는 여행의 목적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다 좋았고 신기하게 구경하며 다니고있는데, 마음 한켠에 공허함이 계속 있었던 듯 했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여행 시작부터 피곤에 절어있거나 감기기운이 있는 상태로 계속 어딜 다녀야해서 정신을 못차렸던 거 같다. 과거의 내가 계획해둔 페이스대로 다니다보니 현재의 내가 나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즐길 때 즐기기도 했지만 그 간격이 계속 조금씩 있었다. 좁게 한치 앞만 생각하고 여유롭게 다른 생각들은 전혀 하지 못했다. 낯선 땅에 와서 계획한 곳 잘 가고 가진거 안 뺏기고 잘 먹고 살아남기에도 바쁜 느낌. 근데 사실 그것만이 내 여행의 목적은 아닌데.



다음날 아침. 그라나다에서부터 조금씩 부어있던 목이 이제 완전 더 땡땡 붓고 콧물이 나기 시작했다. 감기기운이 스페인에서 산 약으로 꽤 해소되서 괜찮은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몸 전체가 정상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오전 내내 침대에서 못일어나고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서까지 계속 잤다.


깨어나니 급 배가 고파졌다. 오늘은 해물밥이란걸 먹어봐야겠다. 네이버 블로그에 포르투갈 맛집이라고 치면 대부분 해물밥이나 뽈뽀를 추천하고 있었다. 도대체 해물밥이란 무엇인가. 찾아보니 포르투갈어로는 'arroz de marisco'. 해산물 이것저것 들어간 탕에 밥 말아먹는 느낌. 뭐랄까 해장될만한 뜨거운 국물도 있고(술은 안먹었지만) 맛도 얼큰해보이는 비주얼의 그것을 먹지 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시내에 나가서 평점이 좋고 가까운 식당에 들어갔다. 해물밥이 노포 아주머니가 쓸법한 작은 냄비에 나왔다. 구글 리뷰 중에 한국어로 '매운 소스를 넣어 먹으면 1% 부족한 맛이 채워진다' 라고 적혀있는 리뷰가 있었는데, 진짜로 맛있긴한데 뭔가 부족한 맛이었고 옆에 있는 피리피리 소스를 몇방울 넣어 섞어먹어보니 내가 원하는 딱 그맛이 나왔다. 신기하고 너무 맛있었다. 살거같았다. 새우가 약간 비린맛이 났던 걸 제외하면. 계속 소스를 뿌려가며 땀을 뻘뻘 흘리며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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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전된 기운으로 피게이라 광장, 소품샵 'A Vida Portuguesa'를 들렀다가 다리가 아파올 때 쯤 카페 브라질레이라로 들어갔다. 클래식 그 자체의 인테리어가 고풍스러웠다. 다만 자리가 좁고 옆 테이블이랑은 손 한 뼘 정도의 거리밖에 없었다. 리스본에 오기 전에 읽으려다 별로 못읽은 '다정한 구원' 이란 책을 펼쳤다. 딸과 함께 리스본을 여행하는 작가의 에세이인데, 이 도시에 대한 타인의 감상이 궁금했다. 마침 딱 브라질레이라 카페가 등장해서 웃었다. 근처에 페소아 동상과 서점이 있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알게됐다. 바로 옆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를 외국어라서 ASMR삼아 평온하게 책을 읽었다.


IMG_1482.JPG?type=w1 Café A Brasileira


책에 언급된 오래된 서점 두 군데가 근처라 바로 가보았다. 둘의 차이가 극명해서 인상깊었다.

첫 번째 서점은 Livraria Sá da Costa.

문을 열자마자, ‘오… 오래되었다…’ 하고 자동으로 조용히 둘러보게 되는 분위기. 고서적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책등도 오래되어보였고 두꺼운 책이 많았다. 관광객 입장에서 살건 없었고, 그런 책을 좋아하는 마니아들 입장에서는 흥분할만한 그런 공간이었다. 살짝 둘러본 뒤 바로 나왔다.


두 번째 서점은 Livraria Bertrand – Chiado.

여긴 오래됨을 아예 브랜드처럼 활용하고 있었다. 직원 한 명은 투어가이드처럼 어떤 영국인에게 서점의 역사 설명을 발랄한 톤으로 하고 있었다. 조심히 옆에서 엿들었다. 본인 입으로 서점에 열정이 있다고 말하며 구석에 있는 비밀 공간도 알려주고... 열정이 넘쳤다. 다른 직원 한 명은 계산대에서 쉴새없이 스몰톡을 건네고 있었다. '조니아' 유투브 채널에서만 듣던 느낌으로.. 내부도 깔끔했고, 예뻐서 마음을 사로잡는 책표지들이 가득한 파트도 있었고, 영어 책 코너도 친절하게 큐레이션되어있었다. 사고싶은 책이 너무 무거워서 갈등 100번 하다가 결국 내려놓았다.


첫번째 서점은 시간을 그대로 쌓아두고 손님이 알아서 찾아오게 한다. 두번째 서점은 시간을 반질반질하게 닦아서 손님에게 건넨다. 내가 '오래된 공간을 좋아한다' 라고 말할 때는 대부분 후자의 케이스였던 것 같다.


IMG_1503.JPG?type=w1 Livraria Bertrand – Chiado
IMG_1500.JPG?type=w1 Livraria Bertrand – Chiado



자는 시간이 아까웠지만 한번 푹 쉬고 충전이 된 후 다니다보니 그래도 생각에 여유가 생겼고 페이스를 찾은 기분이 들었다. 좀더 장기적인 고민을 하고, 서점들의 차이점을 생각해보기도 하고, 책 읽으며 연상되는 여러가지 생각도 할 수 있었다. 예상보다 많이 지체되면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버릇을 멈출 수는 없었지만 선택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고 마음 먹었다. 그래도 괜찮다. 그래야 괜찮다.





리스본을 다시 간다면


가볼만한 곳

- 아무 전망포인트에서 일몰 보기

- A Vida Portuguesa: 포르투갈 전통의 소품들이 큐레이션되어있는 샵. 특별히 소품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도 흥미로웠다


맛집

- Fábrica da Nata

(사실 포르투갈을 다시 간다면 리스본 말고 다른 곳을 가볼 것 같다. 별로 더 있고싶지는 않았다. 포르투는 다시 갈만한데.. 포르투에도 A Vida Portuguesa랑 Fábrica da Nata 체인점이 있음)



나타 맛집 5개의 개인적인 순위

Fábrica da Nata >>> a brazilreira > manteigaria > Pastéis de Belém > castelo

(개인적 취향: 시나몬을 안좋아함; 너무 달달한건 싫지만 아얘 달지 않은건 별로 - 그래서 벨렘지구의 가장 유명한 나타가 나에게는 그리 감동스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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