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직업에는 크건 작건 저마다의 직업병이 있다.
사서로 일하면서 생긴 내 직업병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1. 손이 거칠어진 것
2. 책을 읽지 않고 책 표지만 보고도 내적 친밀감이 쌓이는 것
3. 모르는 사람을 '선생님'이라 호칭하는 것
4. 손목터널 증후군
5. 판권지 확인하기
1. 손이 거칠어진 것
도서관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경험할만한 직업병이다. 책을 만지다 보면 자연스레 상처도 많아지고 손가락 마디도 굵어지며 피부도 거칠어진다. 책에는 생각보다 먼지가 많다. 그리고 책 종이에 손을 베이면 서늘한 느낌이 들 정도로 아프다. 그리고 상처는 생각보다 오래간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서들은 핸드크림을 책상 위에 구비해놓고 자주 덧바르지만 그때뿐이다. 몇 분 뒤 손은 금방 건조해지고 핸드크림을 바른 손으로 책을 만지면 그 위에 또 먼지가 앉아 악순환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의 손을 탄 책은 자연히 먼지와 함께 생활오염이 더해져 갈변하게 되고 그 갈변한 종이는 사이사이에 먼지를 머금고 있다.
무거운 책을 계속 만지고 들고 내리고 하다 보면 자연스레 손가락 마디도 굵어진다.(내 손가락이 일반 사람보다 좀 굵기는 하다.) 자료실에서 직접 책을 만지는 일을 할 때와 사무실에서 책을 다루지 않는 일(예를 들면 문화행사 프로그램이니 행정업무를 하는 경우)을 하던 때의 손 상태를 확인해보면 확실히 차이가 많이 난다. 이 부분은 대부분의 사서가 갖고 있는 직업병일 것이다.
2. 책을 읽지 않고 표지만 보고 내적 친밀감을 느끼기
사람들이 자주 찾는 책은 대출, 반납 횟수가 많은 편이고 그래서 자주 보게 된다. 게다가 그런 책은 보통 예약이 걸려 있어 데스크 근처에 따로 보관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일을 하며 눈에 자주 띄게 된다. 그래서 책을 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읽은 듯한 착각이 들고 그 책과 내적 친밀감을 쌓게 된다. 실용서, 경영, 부동산, 심리학 책을 주로 다루는 자료실에 근무하는 지금은 꾸준히 인기가 많은 유현준 교수의 '공간이란 무엇인가'와 경제 관련 도서인 '부의 시나리오', '부의 인문학',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타이탄의 도구들' 그리고 예약도서 칸의 단골손님 '사피엔스' , '팩트 풀니스', '미움받을 용기', '오은영의 화해'라는 책과는 절친이라도 된 기분이다. 읽지 않은 게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두세 번은 읽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미 마음으로 친해진 것이다. 그래서 어딘가에서 그 책들을 보면 반갑고 아는 척이 하고 싶어 진다.
3. 모르는 사람을 '선생님'이라 호칭하는 것
서비스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볼 수 있는 직업병이다. 사서는 책을 상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그래서 사서는 서비스직이다. 다루는 품목이 '책'일뿐이지 사서는 항상 사람을 만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이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을 상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공공도서관의 경우 연령과 성별이 다양한 이용자가 이용하기 때문에 이용자를 호칭하기가 애매하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이용자를 부를 때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연령에 상관없이 일단 성인의 호칭은 '선생님'이다 미성년자의 경우에만 '학생'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나도 보통 '선생님'을 사용한다. 그래서 간혹 식당이나 밖에서 모르는 사람을 부를 때 '선생님'이란 호칭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4. 손목터널 증후군
손목터널 증후군은 직장인이라면 앓게되는 흔한 직업병이라지만 대부분의 사서가 이 증상을 경험했을 것이다. 무거운 책을 나르고 옮기고 꽂다 보면 자연히 손목에 무리가 따른다. 책을 꽂거나 옮기는 것 이외도 대출반납 바코드를 스캔하거나 마우스를 움직이는데 손목이 많이 사용하다 보니 퇴근 후 집에 돌아올 때쯤에는 손목이 시큰하다. 대학교 시절 동네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자료실에 계시던 사서 선생님께서는 항상 내게 손목을 아끼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실제로 손목 보호대를 착용하고 대출업무를 하시던 선생님은 심한 통증으로 병원에 다니고 계셨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RFID 시스템이 아닌 감응기로 대출반납을 했기 때문에(현재 우리 도서관은 대출반납에 RFID 시스템을 이용한다. 이 시스템은 도서를 리더기 위에 올려두면 한꺼번에 인식을 하고 보안도 해제해준다.) 보안을 해제하여 도서를 대출해주기 위해서는 감응기에 도서를 몇 차례 왔다 갔다 해주어야 했다. 그 시절 사서들은 그래서 손목에 더 무리가 갔을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이 좋아진 지금도 나는 그때 그 선생님이 내게 손목을 왜 보호하라 하셨는지 알 것 같다.
5. 책을 볼때면 판권지부터 확인하기
판권지라는 것이 있다. 사전을 검색하니 "책의 맨 끝 장에 인쇄 및 발행 날짜, 저작자ㆍ발행자의 주소와 성명 따위를 인쇄하고 인지를 붙인 종이."라고 나온다. 책의 맨 뒷장에 출판사 정보와 펴낸이, 초판인쇄일, 디자인 책임자 등 책의 출판정보를 수록해 놓은 페이지를 말한다. 보통 책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책을 넘겨보다 한번 씩 본적이 있을 것이다. 책의 내용에 대한 정보는 없어서 사람들은 신경써서 보지 않는 이 부분을 사서인 나는 제일 처음 확인한다. 책에 대한 정보를 모두 담고 있는 부분이라 목록을 입력해야하는 사서에게는 중요한 정보원인 것이다. 그래서 업무가 아니어도 서점에서 새 책을 집어 들때면 나는 항상 책의 맨 뒷장부터 펴본다. 그리고는 혼자 되네인다. 아 10쇄를 찍었으면 정말 잘 나간 책이구나. 아 지은이가 대학교수 출신이구나하는 세세한 정보를 나는 그곳에서 얻는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사서가 아니라면 이런 맨 뒷페이지를 제일 처음 볼 일은 없을거라고.
근무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른 직업병이 있을텐데 다른 사서들은 어떤 습관이나 직업병이 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