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회사부터 임금체불 3

왜 출근했는데 저밖에 없어요?

by 권이름

엄마가 용돈을 보내줬다. 반찬도 보내줬다. 큼지막한 스티로폼 박스에는 내가 굶고 다니는 줄만 아는 엄마가(그럴 리가), 조금이라도 뭔가를 먹지 않으면 사람이 서럽고 궁색해지는 줄만 아는 엄마가 잔뜩 보낸 반찬, 국들이 냉동되어 있었다.




엄마는 그 회사가 뭐 하는 곳인지 영 미심쩍어 보였지만 취업 축하한다며 밥 잘 챙겨 먹으라고 말했다. 용돈도 슬쩍 보내줬다. 늘 그렇듯이 구질구질한 옷 좀 사 입지 말고 백화점에서 좋은 것 좀 뭐든 사 입으라는 당부와 함께.



나는 엄마의 백화점 타령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에서 가방을 샀다. 전혀 첫 출근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백팩으로. 백팩을 산 이유는 단순했다. 외근도 많을 것이고, 노트북을 이고 지고 다니면서 처리할 일들도 많겠지? 신입사원의 정석인 양 단정한 백팩을 사두고 나는 엄마 밥을 챙겨 먹으며 첫 출근 만을 기다렸다.








첫 출근날, 잘 신지 않는 구두도 신고 치마도 입고 재킷도 하나 걸치고 백팩에는 노트와 펜, 화장품 파우치 등을 넣어 집을 나섰다. 내가 사는 자취 집은 한 대학의 정문 근처였던 터라 출근 시간에는 학교 정문을 향해 학생들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들과는 반대방향으로 향했다.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켜지면 그들은 학교 정문을 향해 나는 그 반대인 도심을 향해 나아갔다.




지도 앱을 보며 도착한 회사 건물은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이었지만 참 평범했다. 도착하자 나를 반기는 건 경영지원 팀의 직원이었다. 안경을 쓴 선한 인상의 그녀는 여기가 사무실이라며 문을 열어주었다. 독서실 같은 좁은 사무실이 눈앞에 드러났다.



딱 세 명이 앉을 만한 자리였다.



"저희가 스타트업이라 이 사무실은 지원을 받아 입주하게 됐어요. 아직 같은 팀 분들이 오지 않으셔서 조금 심심하시겠지만 앉아서 기다리시면 대표님 오실 거예요."



"엇, 혹시 저... 혼자 일하나용?"


"아 (웃음), 아니에요! 외근이 있으셔서 늦는 거예요.아 오늘 대표님도 어디 들렀다 오셔서 늦는데 나중에 인사하세요!"



나는 작고 허름한 사무실의 문가에 앉아 차분히 가방을 열어 노트를 꺼내놓고 기다렸다. 노트북도 만지작거리며 기본적인 세팅을 해두어야겠다며, 앉아 있었다. 꿔다논 보릿자루처럼. 그말이 가장 정확했다. 공간에 스며들지 못하고 우두커니 쓰임새를 기다리며 두리번거리며 앉아 있는 입사자. 입사 첫날엔 뭐 쉬엄쉬엄 하는 거지 뭐. 근데 진짜 조용하네, 아니 이거 사람 자체가 없는 건물인가?



나는 그러는 내내 조금은 불안하고 생소했는지 친구에게 카톡을 보내며 내 상황을 중계했다.




'야 ㅋㅋ 나 출근했는데 나 혼자 밖에 없어 뭐징'

'이상한 회사 아니야?'

'아 ㅋㅋㅋㅋ 그래도 곧 오겠지머'




언제 오시는 거지, 나의 동료는 어떤 사람들일까. 그러고보니 나 인생 첫 회사네. 출근 시간인 9시가 지나도, 10시가 지나도 오지 않았다. 내가 기대한 첫 회사 입사날의 풍경은 아니긴 했다. 예컨대 이런 모습, 큐비클로 구획된 사무실로 들어가면 나이가 지긋한 부장이 에헴, 하고 헛기침을 한다. 그러면 자리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뒤를 돌아본다.




"자자, 오늘부터 새로 출근하게 된 김엠마 사원이에요."

짝짝짝 일동 박수

"환영해요~"

"잘 지내봐요~"

"아 ㅎㅎ 부장님 새 직원도 왔는데 회식해야죠"

"얌마 넌 이럴 때만 ~! 회식타령이야 껄껄~ %@#~"



이런 클리셰.




드라마의 흔한 장면들을 텅빈 독서실 같은 사무실에서 상상을 하다가 괜스레 이것저것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물품을 떠올렸다. 필기구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특히 가위가 필요할 거 같아. 이유는 몰라. 일하다보면 필요하겠지. 펜과 포스트잇, 수정테이프 그런 거 필요하려나. ...있으면 아무래도 유용하니까? 구두를 신고 오니까 불편하네. 사무실에서는 슬리퍼 신어야겠는데 오늘 슬리퍼 사야지. 목마른데 종이컵은 없나. 복사기는 쓸 때마다 어렵던데 누구한테 물어보지? 밥은 다들 어떻게 드시는 거지? 나 혼자 먹나? 사무실은 좀 추운 것 같은데. 그렇게 점심시간까지 사무실의 빈 서랍을 구경하며 무엇들로 채워나갈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사무실 문이 열렸다.



엇, 아, 어 안녕하세요!




면접 때 봤던 여자 분이 자리로 들어왔다. 어 안녕! 그녀는 가볍게 시선을 나로부터 거두고 익숙한 듯 창가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펴고 일하기 시작했다. 어 음.. 저 뭐해야 되는지 알려주시고 일 하시면 안되나요? 다시 꿔다논 보릿자루 모드가 된 나는 멍하니 모니터를 봤다. 뭔가 되게 열심히 보고 있다는 듯이, 이전에 발행된 간행물들을 열심히 읽으며 나를 불러주길 기다렸다.




그렇게, 대학 졸업장에 학교 낙인도 아직 찍히지 않았을 겨울방학, 나는 그렇게 텅 빈 독서실 같은 사무실에서의 께름칙한 첫 출근으로 8개월의 첫 회사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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