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겠습니다.
퇴사를 하려고 합니다. 나는 메모장에 퇴사 통보를 하기 위해 적었던 말을 차분하게 말로 풀기 시작했다. 팀장에게 임금체불과 커리어를 지속하기 힘듦을 이유로 퇴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어떤 기승전결으로 말하면 좋을까, 한참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당연히 상대방에게 귀책 사유가 있는 이별 통보였는데도 그 말을 꺼내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가 든다는 게 조금 억울했다.
“엠마 씨, 저는 좀 더 빨리 관두는 게 좋았을 거라 생각해요”
나는 의외의 답변에 팀장을 빤히 쳐다보았다. 여기는 선배들한테 밀착해서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적고, 연차가 쌓인 선배들뿐이라 외로웠을 거라고 그는 말했다. 월급이 밀리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좀더 빨리 퇴사하고 다른 회사를 가는 게 본인 커리어에 좋았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일찍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할지, 버젓이 투잡하시는 선배들을 보며 많은 귀감이 되었다 해야 할지 혼란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뭘 해보려고요?”
“취업 준비가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서, 공부도 좀 하려고요.”
“그래요,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주고요.”
대표와 경영지원팀까지 이 소식이 전해지고, 나는 체불된 임금이 남아 있는 상태로 퇴사하게 되었다. 급여는 찔끔찔끔 간을 보듯이 밀렸다. 그래도 막내의 사정을 생각해서 막내부터 일부 지급했다는 말과 함께, 나는 알바를 하며 월급을 조금씩 나눠 받았다.
나는 다이어리에 세운 새로운 계획을 다시 들춰보았다. 우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니 이걸로 월세와 생활비는 충당할 수 있었다. 다만 대학원을 갈지, 취업 준비를 위한 공부를 할지 고민스러웠다. 서점에서 한창 취업, 자격증 섹션에 서서 책을 고르는 사람들을 봤다. 나도 그들처럼 차분히 다른 루트를 찾아봐야 할까, 한국사와 영어, 각종 대기업 인적성, 내 적성에 맞는 일인지. 아니면 학교 다닐 때 부족했다고 생각한 전공 공부를 더 해보면?
서점에서 돌아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밥을 먹었다. 식사는 뭐든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플라스틱 밥, 플라스틱 반찬, 플라스틱 스푼, 이에 닿는 텅 빈 마찰음. 핸드폰으로 임금체불 받는 법을 검색해 노무사들의 지식인 답변을 찾아보고, 두서 없는 블로그 글들을 살펴보며 노동청에 신고하는 법을 알아 내려갔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나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었다.
계속 근로한 시간은 8개월 이상이었지만, 3.3% 고용계약이 약 3개월에 걸쳐있었다. 계약을 3.3%로 했을 때 이런 경우의 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왜 말을 안해줬을까 대표가. 그도 이런 체불임금의 상황을 예상 못했기 때문에? 정말 자잘하고 너저분하군. 대표의 얼굴을 떠올리자 환멸감이 올라왔다. 플라스틱 용기를 씻으며 욕이 나왔다. 나는 월급이 밀리고 며칠 째가 되어야 신고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다이어리에 적어두었다.
며칠 뒤, 나는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신고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