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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하 May 25. 2022

내 몸을 지나가는 나무의 빛

나는 계속 자라고 싶다네


우리는 늘 타인과의 관계 속에 놓여 있어. 그런데 그 관계라는 것이 참 어려워. 어느 날은 그래, 타인과 함께 하다 보면 무엇이 진짜 내 마음이었는지 알 수가 없는 순간이 있지. 이를테면 타인이 투사(投射)시킨 감정이 수치심으로 작용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 수치심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 말이야.


타인이 던진 말 한마디에 얼떨결 수치심을 느끼고 뒤따라오는 분노를 참아 내기가 어렵다면 타인이 투사시킨 감정이 긍정적인 것인지, 부정적인 것인지 우리는 잘 분별해야 할 필요가 있어. 문제는 타인이 투사시킨 감정이, 그 자신의 열등감과 피해의식 같은 부정적인 것이었는데 그러한 투사에 협력함으로써 우리가 떠안게 되는 타인의 감정에 대해 우리는 어지간해서는 분별이 쉽지 않다는 것이지.


자기 몸을 지나가는 빛들을 양분으로 전환시키는 나무처럼, 부정적인 감정들을 상대에게 투사시키지 않고 자기 혼자서 걸러낼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간을 견뎌야 하는 것일까.



“내 몸을 지나가는 빛들을 받아서

혹은 지나간 빛들을 받아서

가을 강처럼 슬프게 내가 이곳에 서 있게 될 줄이야

격렬함도 없이 그냥 서늘하기만 해서 자꾸

마음이 결리는 그런 가을 강처럼

저물게 저물게 이곳에 허물어지는 빛으로 서 있게 될 줄이야

주름이 도닥도닥 맺힌 듯

졸망스러운 낯빛으로 어정거리게 될 줄이야”

詩어느 날 내가 이곳에서 가을 강처럼



‘마음이 결리는 그런 가을 강’ 은 한참을 들여다보면 서늘하다 못해 막막할 때가 있어. 그런 강은 가슴이 결리는 통증을 수반하며 너무 커다란 한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 할 일이 많은 우리는, 지나가는 빛을 받아서 가을 강처럼 슬프게 서 있을 수만은 없다는 거지. 그래서 말이야, 결리지 않도록 나무처럼 지나가는 빛을 받아서 양분으로 전환하려고 했어. 양분으로 전환되는 시간과 공간은 온전하게 나만의 몫이야. 그런데 그런 나를 두고 말하기를, 무심하다고, 배려하지 않는다고, 소홀하다고 말한다면, 그건 더 이상 내 몫이 아니지. 그런 말들은 너의 앙탈 섞인 부정적 감정일 수도 있다는 말이야.


나는 계속 자라고 싶다네. 바람과 태양과 공기들과 상생하여 자신의 내부에서 양분을 만드는 나무처럼! 비바람에 자라다 꺾일 수도 있고 온갖 해충들이 갉아먹을 수도 있겠지만 늘 그 자리에서 잎이 지고 무성하기를 반복하는 그들처럼!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을 내부에서 통합시켜 자연스러운 감정을 스스로 소진시키고 싶다네. 이 모든 배움을 나무가 가르쳐주어서  이제 미약하게나마 마음을 비웠는데 이것을 멋진 말로 ‘놓아버림’이라고 누가 가르쳐주더군!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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