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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하 Jul 23. 2022

열매, 파이가 된 사과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기억하기

사과 한 상자가 선물로 들어왔다. 우리 집에 올 때부터 사과들은 싱싱함을 잃은지 오래되어 멍이 들고 푸석거렸다. 버려야 하나. 세상에, 언제부터 우리에게 이토록 먹을 것이 풍족하다 못해 식상할 듯이 널려 있었던가. 내가 어릴 적에는 푸석거리는 사과 한쪽도 귀한 간식이었다. 물질의 풍요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싱싱하지 않은 먹거리는 먹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변명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먹을 수 있는 유용성 있는 재료를 버린다는 것은 엄연한 낭비일 것이다.


열매의 싱싱함은 그대로 우리에게 양식이 되겠지만 열매의 본질적인 기능을 상실한 열매는 이차적인 요리를 요한다. 맛없는 사과를 꾸역꾸역 먹다가 얼마쯤 남은 사과를 몽땅 다 깎아서 그릇에 수북하게 담았다. 그릇에 담긴 사과를 다시 조각을 내고 소스를 만들어 팬에 익힌다. 푸석 거렸던 사과가 메이플 소스와 섞이면서 달콤한 향을 풍긴다. 여기에 시나몬 가루를 첨가하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조합으로 둘이 먹다가 하나가 없어져도 모를 향이 진동을 한다. 반죽해서 냉동고에 넣어놓은 숙성된 파이지를 꺼내서 밀대로 힘껏 민다. 쭉쭉 늘어나는 파이지의 감촉이 부드럽다. 내 마음도 파이지처럼 너그럽게 늘어난다. 이 단순한 행위가 일상의 잡념에서 끊임없이 새어 나오는 수다를 잠재우고 소소하게 나를 깨운다. 그 순간의 일상은 소박하고 그래서 충만하다.


파이지위에 사과 토핑을 얹어서 잘 달궈진 오븐 속에 넣는다. 파이가 오븐 속에서 빵빵하게 부풀어오르며 구워지는 광경을 오븐 창으로 들여다 본다. 뿌듯하다. 처음엔 엄두가 나지 않던 것들도 시간과 정성이 투자되면 자연스럽게 몸에 익혀지게 마련인 것일까. 기본적인 재료조차도 머리에 입력이 되지 않던 때에는 뭐가 뭔지 두서가 없었다. 정신만 쑥 빠진 상태에서 빵을 한번 구우려고 하면 마룻바닥에 밀가루들이 풀풀 날리고 싱크대에 산더미 같이 설거지만 가득했었다. 지금도 물론 별반 다르지 않게 설거지가 가득 쌓이기는 하지만 무엇이 들어가는지 기본적인 것들이 머리에 입력되어 순서대로 여유롭게 즐기면서 빵을 굽는다. 뭐든 그렇다. 즐기면서 할 수 있을 때 기쁨은 두 배가 되나 보다.

 

구워진 파이에 커피를 곁들여서 왕후의 식탁처럼 마주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근사한 파이를 한입 베어 먹다가 <소박한 밥상>의 주인공 헬렌 니어링을 떠 올린다. 버몬트 시골에서 살던 헬렌은 일찍이 케이크와 파이를 생명력이 없는 덩어리로 치부했었다고 한다. ‘오븐에 넣고 죽을 때까지 굽는다’ 는 표현에서 그녀가 얼마나 죽은 빵을 혐오했는지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농사 짓지 않는 도시인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빵을 먹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비록 오븐에 구워서 그녀의 표현처럼 죽은 빵이 되었다손 치더라도 정성스런 손길을 거쳐 가족의 입맛을 살리고 따뜻한 정서를 채울 수 있었으니 이 또한 생명력 있는 빵이 될수 있으리라 믿는다.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훗날 내 아이가 이 따뜻한 추억을 공감각적으로 기억한다면 그 또한 생명력 있는 빵이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렇게 행복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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