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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하 Apr 02. 2022

장미의 이름으로

인생의 장미 같은 날을 내게 선물하다

나의 장미 사랑은 특별하다. 딸아이는 귀가할 때 종종 장미를 딱 한 송이만 사 가지고 온다. 엄마가 장미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낭만 어린 모습은 장미보다도 예쁘고 기특하다. 남편은 생일날 장미 백송이를 사준다. 작년 생일에는 두 팔 가득 안기도 어려울 만큼 장미 삼백 송이를 사 가지고 와서 깜짝 놀랐다. 그와 그녀는 나 때문에 장미를 좋아한다.



오랜만에 대형 화원 나들이를 했다. 그 화원은 정글이다. 온통 초록이 가득하여 들어서는 순간 마음에 초록을 품고 나는 그 정글에서 새처럼 돌아다닌다. 봄이 무르익은 소리가 한가득이다. 이제 집안도 숲이 되어 가고 있는 형편이라서 더는 식물을 사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식집사는 계속 식물을 산다. 꽃을 사려고 간 것은 아니었는데 세상에나, 장미가 또 나를 사로잡는 바람에 장미 화분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결국, 또, 하나를 더 산다. 장미를 정말 좋아하지만 아파트에서 키우기가 쉽지 않다는 걸 익히 경험했음에도 나의 장미 사랑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장미는 그렇게 나의 유일한 사치다.


장미는 수많은 문학 작품에 등장한다. 그만큼 흔하다. 어린 왕자가 지구별에 와서 수많은 장미를 보고 자신이 그다지 대단한 왕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대목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왕자가 살았던 행성의 장미 한 송이는 특별했지만 지구별의 장미는 흔한 것이었다. 소설 <장미의 이름>을 쓴 움베르토 에코는 책 제목을 그렇게 지은 이유가 “장미는 의미가 워낙 풍부하고 상징적인 형상이어서 아무 의미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했단다. 이렇게 지구의 장미는 흔하고 풍부하고 아무 의미도 남아있지 않다지만 그럼에도 역설적인 존재감은 그 어떤 꽃과도 비교할 바가 아니다.


진한 향기, 한 겹 한 겹의 섬세한 레이아웃, 함부로 만질 수도 없는 수많은 가시, 화려하지만 질리지도 않게 하는 고아한 자태, 바닥에 떨어진 한 장의 꽃잎마저도 오롯하게 장미라는 존재감을 드러내고야 마는 장미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장미가 피는 계절에 태어난 나는, 흔하지만 결국 정체성을 오래도록 확고하게 지켜내는 장미를 그래서 오래오래 보고 싶은 것이다. <눈의 여왕>의 주인공 카이와 게르다가 키우던 소중한 장미가 잃었던 기억을 되찾게 해주는 특별하고도 따스한 온기가 되었듯 - 인생의 장미 같은 날을 내게 선물하기를 고대하며 - 장밋빛 인생의 그 한 날을 오래된 미래에서 찾아보려는 소망도 있는 게다.


피어라, 꽃! 한 송이 한 송이마다 고귀한 장미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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