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주기 공명
율마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나무의 진짜 이름은 Gold crest wilma이다. 윌마라고 부르다가 전달 과정에서 율마가 된 듯하다. 유럽 사람들이 북아메리카 오리건에서 발견한 몬테레이 사이프러스(Monterey cypress)를 개량한 품종이라 한다. 맑은 연두 빛을 내기 때문에 고흐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이프러스처럼 무겁지 않고 상큼하다. 그래서 또 다른 이름으로는 레몬 사이프러스라고도 한다. 살짝 건드리면 레몬향과 신선한 풀내음이 배어 나온다. 잎은 일반적인 이파리가 아니고 작은 가시가 무수히 돋아난 형태다.
이 나무를 십 년 전에 한번 고사시킨 적이 있다. 일 년을 잘 키우다가 겨울에 얼어 죽을까 봐 실내에 들여놨더니 아뿔싸 바로 죽었다. 왜 죽었는지 알 도리가 없어서 한동안 허망했다. 이후 다시는 안 키우려 했지만 사이프러스종 나무를 좋아하여 또다시 들였다. 올해로 8년째 자라는 중이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25cm 정도였는데 이제는 내 키보다 더 크다.
율마는 물을 엄청 좋아하고 햇빛과 통풍은 필수다. 조금 까다롭기도 하지만 저 조건을 갖춘 자리에 놓고 물을 잘 주면 된다. 그러고 보면 까다로운 사람도 환경과 조건만 맞으면 순하게 지낼 수 있겠다. 태생적으로 각자 다른데 일반적인 통념으로 사람을 판단하니, 나랑 다르거나 안 맞으면 까다로운 사람이 되고 마는 거다.
다시, 물 주기로 돌아와서, 한 여름에는 이틀에 한 번씩 준다. 물 2리터를 부어주면 그대로 뿌리가 물을 쫙 빨아들여서 밑으로 흘러내리지도 않는다. 마치 화분 밑에서 지하수가 솟구쳐 나와 그 물을 뿌리가 남김없이 빨아들여, 아파트에 사는 나를 땅을 밟고 사는 나로 만들어 주는 느낌이다. 한 여름 낮 ‘율마에게 물 주기’는 그야말로 ‘마음 정화’다. 숨이 턱턱 막히는 찰나에 물 한 병을 쭉 마셔버린 듯한 착각도 주어 내 몸속까지 시원해진다. 물을 주고 나서 나무줄기를 싸악 쓸어 올리면 레몬 덜 익은 냄새가 오감 속으로 공명한다.
나의 율마가 베란다에서 올해도 겨울을 잘 견디고 살았다. 파릇파릇 올라오는 연한 새순을 보아하니, 봄은 이미 왔고 여름이 서서히 오는 것만 같다. 아직도 추운데 무슨 벌써 여름 타령이냐고? 한여름의 그 ‘물 주기 공명’를 느껴보고 싶어서랄까!
이상, 레몬 사이프러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