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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하 Dec 20. 2023

불타는 사랑, 게발선인장

花樣年華를 꿈꾸다




게의 발과 닮았다 하여, 이름 지어진 게발선인장을 키우고 있다. 다른 이름으로는 크리스마스선인장이라고도 한다. 겨울이 되면, 이 선인장에 빨간 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선인장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매우 특별한 일이다. 선인장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 뾰족한 기운이 못내 마음을 찌르는 듯한 통감각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몇 년 전, 파주에 있는 대형 화원에서 게발선인장을 발견하고는 홀딱 반하여, 선뜻 집에 들이게 되었다. 게발선인장은 지금까지 보아오던 선인장과는 뭔가 다르게 굉장히 도발적인 꽃을 불태우듯이 피워낸다. 그 불타는 꽃의 자태처럼, 꽃말도 딱 어울리는 ‘불타는 사랑’ 이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꽃이 다 떨어진 이후에는, 몇 년이 지나도록 그 불타는 꽃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초록색 줄기만 지루하게 자라고 있다. 식물도 키우는 사람을 닮아가는 것일까. 내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끝나 버리고 사그라드는 존재의 지루함을 지나는 중이라서, 게발선인장도 꽃을 피워내지 못하는 것인가. 이런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니, 못나게도 분해지기까지 한다. 올해도 못 피워내면 꽃을 그려서라도 붙여주고 싶은 심정이다. 정녕, 게발선인장의 화양연화는 끝이 난 것일까.


줌파 라히리라는 작가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전혀 새로운 타국어를 배워서 책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를 썼다. 나이가 들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것 일까를 떠올려 보던 책이다. 그 책에서 ‘내 삶의 나머지를 등 뒤에 남겨둔 채 집을 나선다’고 묘사된 문장을 보았을 때, 그 어떤 아름다운 문장을 보았을 때보다도 심장이 뛰었다. 온몸을 타고 도는 환희와 슬픔의 기운이 동시다발적으로다가 나를 설레게 했던 순간, 나도 비근한  존재의 지루함을 떨쳐내고 ‘삶의 나머지를 등 뒤에 남겨둔 채’  집을 나서서 심장이 뛰는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몇 달 후 그토록 설레는 일을 실행에 옮겼다.


나는 지난 일 년간, 시간을 쪼개서 그림을 그리러 다녔다. 화실 가는 날에는 여명이 열리기도 전에 발딱 일어나서, 한껏 차려입고 집을 나선다. 번아웃되어, 우울과 무기력의 바닥을 헤집던 내가 그날만큼은 다른 사람 같다. 망막박리로 시야의 일부가 훼손된 내가 그림을 그리며 사선을 넘는 찰나를 경험도 한다. 그건 꽤 경이로운 일이다, 라며 스스로 감탄도 한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일년은 짧은 시간이지만 무언가를 다져서 기초를 쌓아 올릴 수 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지나오며 불쑥, 이런 생각을 한다. 100세 시대에, 화양연화가 젊은 시절 한때로 끝나 버린다면 인생이 너무 무참하지 않겠는가, 하고 말이다. 게발선인장의 꽃말 '불타는 사랑'처럼 꺼져가는 인생의 불씨를 살려서 다시 한번 내 삶과 불타는 사랑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오늘도 게발선인장을 들여다본다. 여전히 꽃 소식은 없다. 그러나 언젠가 한 번은 다시 피워낼 거라는 믿음을 불어넣어 준다. 그건 나 자신에게 넣어주는 믿음이기도 하다. 그리고는 줌파 라히리가 그랬던 것처럼 삶의 나머지를 등 뒤에 남겨둔 채  현관문을 나선다. 경쾌한 걸음으로 화실에 가서 정갈한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다. 몰입하는 시간이 빠르게 휙 지나간다. 나 자신을 만나는 온전한 시간이다. 그 시간이 쌓여서 무엇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없다. 오로지 나 자신을 만나는 시간이 쌓여서 시간의 재가 불타는, 그런 사랑, 내 영혼이 활활 타오르는 순간을 만나고 싶은 거다. 그리고 화양연화는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고 올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하고 싶을 뿐인 거라!  힘 내 라,  게 발 선 인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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