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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슬 Nov 01. 2020

건너편 옥상으로

우리의 세계로 들어가며

   고등학교 도덕 선생님은 우리들의 잠을 깨우려 수업 시간마다 본인의 철없던 학창 시절 이야기를 줄곧 해주셨는데 그중 대부분은 잊었어도 지금까지 절대 잊히지 않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본드 흡입에 관한 것이다.


   그가 중학생이었을 때, 아이들 사이에선 이상한 게 유행했다. 바로, 본드 흡입.

   치열한 사춘기를 보내는 중인 아이들에겐 자극적인 것이 필요했고 그것은 때때로 불법적인 것이었다. 문방구에서 물건을 훔치거나 어른들 몰래 술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는 일에 더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 아이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본드 흡입이 이루어진 거였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단순 호기심에서였댔다. 엇나가고 싶은 마음이나 그들 무리 속에 끼고 싶은 심리보단 정말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그는 친한 친구 한 명과 함께 한 손엔 돼지 본드를 쥔 채로 본인이 살던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구석에 앉아 나란히 흡입.


   놀라움과 호기심이 뒤섞인 얼굴로 그래서 어땠냐고 묻는 우리들에게 그는 이렇게 답했다.

   “너무 멀쩡한 거야. 내가 방금 본드를 흡입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멀쩡하더라고. 역시 별거 없구나,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건너편 아파트 옥상이 보이는 거야. 그런데 순간 이런 마음이 들더라. 여기에서 점프하면 저기에 착지할 수 있겠는데?”


   어딘가 귀엽고 조금은 무서운 이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는 건 감히 그가 느꼈던 그 날의 마음을 나 역시 알 것 같은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현이와는 알고 지낸 지 육 년 정도 됐다. 알고 지낸 게 육 년이고 본격적으로 친해진 건 햇수로 오 년 정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인스타그램이란 이상한 공간에서 만난 여자애와 이상하리만큼 가까워졌다.

   나는 너무도 유치한 사람이라 내 사람과 내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 관계를 나누는데 현이는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온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나는 현이를 실제로 처음 본 날,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수줍게 책 선물을 내미는 그녀를 보며 속으로 생각한 거다.

   ‘얘랑 친해지기 힘들겠는데?’


   하지만 삶은 내 뒤통수치기를 좋아해서 보란 듯이 너무나 손쉽게 현이를 내 삶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녀는 금사빠인 내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사랑하게 된 많은 사람 중 하나이지만, 점점 더 강하게 그리고 지금까지도 절대 잃고 싶지 않은 자꾸만 더 잘 보이고 싶은 거의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사람을 사랑하는 동안엔 정신을 차리기 힘든 내가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는 나와 상대의 세계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상대와 미치도록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나를 허무맹랑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상대가 좋아하는 건 일단 좋아하고 보고 상대가 싫어하는 건 무조건 싫어하고 보는 것. 그러면서 내 세계를 상대에게 강요할 때도 많았다. 그게 먹히지 않을 땐 더없이 서운했다.

   그러나 현이를 사랑하는 동안 나는 다른 방식의 사랑을 배운다. 서로의 교집합 주위만을 빙글빙글 돌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서로가 가장 멀어질 수 있는 지점까지도 산책을 다녀오는 것이다. 서로의 세계가 완벽히 겹치지 않더라도 우리의 세계는 계속될 것이란 믿음이 내게는 있어서다.


   그리고 그 믿음을 심어준 현이가 바로, 건너편 옥상에 있다.

 

   나는 할 수 없이 계속 나라서 내 식의 사랑을 반복한다. 자꾸만 호기심에 본드를 흡입했던 어린 그의 심정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점프하면 저기에 착지할 수 있겠는데?

   그러면서 어젯밤 잠들기 직전까지 읽었던 책을 손에 꼭 쥐어본다. 현이가 어서 일어나기를 기다리며 그러다 결국은 못 참고서 이 책이 얼마나 끝내주는지 이 작가가 얼마나 대단한지 장황한 문자를 잔뜩 보내는 거다.


   이제 나는 누군가를 계속해서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처럼, 더는 나조차도 어쩔 수가 없어서 내 세계의 난간 위로 조심스레 올라선다. 좋아하는 작가의, 좋아하는 책의, 좋아하는 문장을 손에 꼭 붙든 채 저 너머에 있는 현이의 세계를 바라보다가



   바라보다가

 


   마침내



   점프.



   

   (이슬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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