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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레나 Sep 18. 2022

종업식

2021학년도에 희망하던 학교가 아닌  학교로 발령을 받았었다.

20명의 2학년 아이들. 예쁠 때도 많았지만 정말 힘들기도 했다.

3월에는 잠시도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지 않고 화가 나면 주먹부터 나가는 아이 때문에 진땀을 뺐다.

수업 시간에 갑자기 배고프다, 심심하다 하는 아이부터 눈만 마주치면 싸우는 아이들, 내가 하는 말꼬리를 잡아 부정적으로 말해 수업 중 기운 빠지게 만드는 아이, 동생을 죽을 때까지 때리고 싶다고 악담을 퍼붓는 아이. 나를 멘붕에 빠뜨리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하루도 평화롭게 지나가는 날이 없었다. 짧은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을 불러 자초지종을 듣고 타이르고 화해시켜야 했으며 내가 계획한 수업을 만족스럽게 끝낸 적이 많지 않았다.

'아, 정말 힘들다.'

이런 생각을 늘 하며 1년을 보낸 것 같다. 마음 쓰이는 아이들이 너무 많은 우리 반이었다.

12년 교직생활 처음으로 학부모님이 전화로 내게 소리를 지르는 일도 있었다.

내 성격상 나는 또 나를 자책하며 힘들어했다. 내가 더 모든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어제는 2021학년도를 마감하는 종업식 날이었다.

아이들에게 뭘 해줄까? 고민하다가 상장을 준비했다.

깨끗한 식판상, 미소천사상, 웃음상, 최고의 금손상, 최고의 화가상, 도움천사상, 모둠활동 이끔이상, 따뜻한 마음상, 바른 인사상 등

한 명 한 명 다른 상을 주려고 생각을 하다보니 한 명 한 명 참 애정이 가고 장점이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명씩 상을 주고 준비한 간식 뽑기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면 3교시 중 2교시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폭발적이었다. 혹시나 상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가 있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상장을 받는 아이들 표정이 너무 기뻐 보였다. 거창하지 않은 간식 선물도 어떤 것을 뽑을까 긴장하며 두 눈을 반짝이는데... 아, 왜 그리 예뻐 보이던지! 

아이들이 만족할 만한 마지막 선물을 준비한 것 같아서 기뻤다. 그리고 아이들은 작은 칭찬에도 뿌듯해하고 행복해 하는구나. 칭찬의 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1년 동안 찍었던 사진도 함께 보고 통지표를 나눠주고 진짜 헤어지는 순간.

남자아이 한 명이 울음을 터뜨리더니 나를 제일 힘들게 했던 아이가

"선생님, 3학년 때도 선생님 반 하면 안돼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가슴이 뭉클했는데, 장난꾸러기에 학부모님과 트러블이 있었던 아이가

"선생님, 선생님이 하는 말은 다 맞는 말이에요." 

이 말에 눈물이 울컥 맺혔다.

지각도 자주 하고 내 속을 많이 썪였던 여자아이도 나를 안고 한참을 펑펑 울었다.

"선생님, 왜 다른 학교로 가요? 3학년 때도 우리 선생님 되면 안돼요?"


나는 자존감이 낮고 남 눈치를 많이 보는 타입이라 늘 나를 반성하고 채찍질 하는 편이다.

내가 하는 게 잘 하는 걸까? 늘 물음표를 달고 사는데 아이들의 진심어린 한 마디에 '내가 잘못하고 있진 않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 기쁘고 이렇게 진심으로 말해주는 아이들이 고마워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오후엔 학부모님들로부터 문자도 왔다.

아이가 선생님의 반이어서 행운이었다는 정말 기쁜 말. 

아이가 선생님이랑 헤어져서 너무 속상해 한다는 말.


1년을 마무리하는 종업식 날, 앞으로의 교직생활을 해 나갈 큰 깨달음과 자신감을 얻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한 말과 행동은 진심이었기에 '진심은 통하는구나.'.

내가 자존감이 낮고 남 눈치를 많이 보는 것을 가장 큰 단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그런 단점 때문에 아이들의 마음을 더 헤아리게 되는 것 같다.

소외되는 아이가 있어 보이면 그게 나인 것 같아 더 마음이 가고 신경을 쓰게 되는데 그게 교사로서는 큰 강점이 될 수도 있구나.  

2017학년도에 학생으로 받은 편지에서도 "선생님 하는 말은 다 맞는 말이니깐 선생님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라고 적혀 있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던 우리반 말썽꾸러기가 "선생님 하는 말은 다 맞는 말이에요."라고 해주니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교직 생활을 해야할지 감이 잡힌다고 할까?

어제 정말 많은 것을 깨달았다. 

'나는 생각보다 잘하고 있구나. 진심을 알아주는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교사라는 직업이 참 보람있는 것 같다.' 


이제 새로 시작할 새 학기엔 또 어떤 아이들을 만날지, 신규 때와 같은 열정이 막 불타오르는 것 같다.

매년 새로운 아이들을 만날 수 있고, 연예인 못지 않은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며 보람도 느낄 수 있는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할길 참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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