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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GI Oct 12. 2020

어쩌다 보니 편집자로 살기

《도기의 기묘한 모험》 시리즈 1편


DOGI 또는 김도기


나를 소개하자면, 남의 초벌 원고를 돈 받고 팔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드는 일만 6년째 하고 있는 웹소설 편집자다. 그나마 편집 외길이면 준전문가 행세라도 해 볼 텐데 딱히 그렇지도 못하다.


지금부터 6년째 준전문가도 못 된 기묘한 편집자 이야기를 세 편에 걸쳐서 해 보겠다. 흥미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뒤로 가기’를 누르자. 브런치엔 좋은 글이 바다처럼 많고, 글의 홍수를 탐험하고 있는 당신의 시간은 소중하니까.



《도기의 기묘한 모험》 시리즈 목차

1편. 어쩌다 보니 편집자로 살기
2편. 무스펙 비전공자로 출판사 취업 뽀갠 후기
3편. 6년 차 웹소설 편집자가 퇴사를 준비하는 이유



어쩌다 편집자


2013년 여름에 대학을 졸업했다. 천생 ‘문송합니다’인 주제에 경영학을 전공했다가 어디 내밀기도 부끄러운 성적표만 남았다. 졸업 후엔 막연히 책이나 만들까 하며 서울북인스티튜드(SBI) 편집자 과정 입시에 도전했다가 3차 면접에서 탈락했다.


공짜로 배울 실력이 안 되니 돈을 내고 배웠다. 대표적인 출판인 양성 기관이 SBI라면, 또 다른 양대 산맥으로 한겨레출판학교가 있다. 고맙게도 여긴 타고난 자질과 상관없이 돈만 주면 출판의 ‘ㅊ’의 첫 번째 획 정도는 맛볼 수 있도록 열려 있는 곳이었다. 34만 원을 지불하고 한겨레 예비 출판편집자 입문 과정 49기를 수강했다. 운 좋게도 현 출판계에 수많은 후학을 양성하신 변정수 편집자님을 선생님으로 만났다. 정말이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였다.


나는 웹소설이란 개념도 생소하던 당시에 ‘라이트노벨 편집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몰래 판타지 소설 보다가 얻어맞던 싹수 노란 학생이었는지라, 좋아하는 소설(등단 문학 제외)도 보면서 돈도 벌면 좋겠다는 얄팍한 마음가짐이었다. 물론 선생님은 나를 보며 ‘이 자식 뭐지’ 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 수업에서 배운 내용들은 다소 추상적이지만 지금까지도 되새길 만큼 귀중한데, 여기서 다 얘기하면 편집 철학 담론이 되니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 어쨌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썼더니 이력서에 추가할 것이 생겼다.


2014년 취준생 도기 이력서

· 전공: 경영학과
· 토익 점수: 없음
· 자격증: 사무자동화산업기사
· 외국어: 없음
· 대외 활동: 없음
· 해외 경험: 없음
· 관련 경력: SBI 탈락, 한겨레 예비 편집자 과정 수료
· 취미: 오타쿠 덕질
· 특기: 노래방 7시간 레이드
· 장래 희망: 판타지 소설 편집자


3천만 원짜리 경영학과 졸업장과 30만 원짜리 예비 편집자 강의. 7년 전 취준생이었던 내가 돈을 주고 이력서에 기입할 수 있었던 스펙의 전부였다.


당신은 ‘저딴 스펙으로 출판사 취업이 가능하면 당장 나도 들어가겠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 생각이 맞다. 누구나 도전할 생각만 있다면 편집자로 먹고살 수 있다. 나는 늘 무스펙 비전공자도 출판사 취업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다닌다. 어쨌든 지금 내가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하필이면 편집자


내 주장만 들으면 만만하기 짝이 없는 직업임에도, 편집자 자리가 늘 구인/구직난에 시달리는 이유는 다양하다.


일단 책을 좋아하는 것과 책을 만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내가 고양이 2마리와 함께 생활하지만 고양이 용품 산업에는 관심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독자로서 좋은 책을 읽으면 지적 감동이 충만해지지만, 그 충만함을 무에서 유로 창출하는 출판 과정은 지난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글쓰기에 일가견이 있어야 한다. 글알못이 프로 작가의 원고를 관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구든 글 좀 쓰면 작가에 도전하려 하지, 처음부터 남의 글 고치려고 달려드는 경우는 드물다. 나 역시 처음엔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출판에 사명을 갖고 임하는 다른 편집자들에게 빗대면 부끄럽지만, 나는 작가로 먹고살지 못해 편집자가 된 케이스다.


또 편집자는 교정교열 능력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능력이 필요하다. 기획력, 분석력, 영업력, 마케팅 능력, 디자인 심미안, 일정 관리, 조직 적응력, 커뮤니케이션 스킬…… 다시 말해 편집자는 스페셜리스트의 탈을 쓴 제너럴리스트다. 솔직히 이만한 자질이 있으면 굳이 야근과 박봉의 대명사인 출판사에 짱박혀 살아갈 이유도 없다.


출판사들이 늘 ‘경력자’나 ‘경력 있는 신입’만 찾아서 쌩신입 유입이 활발하지 않다 보니, 자연히 업계 밖 사람들은 취업 문턱을 넘기 힘들다. 대체 콧대가 얼마나 높아서 저들끼리 인력을 돌려쓰냐고 묻는다면, 그 폐쇄적인 공동 안에서 사는 사람도 할 말은 있다. 당장 프로 작가들을 관리할 인력은 부족한데, 뽑자마자 편집자로 투입할 만한 슈퍼 루키(super rookie)를 구하는 게 도통 쉽지 않다. 편집자 할 능력으로 다른 산업에 가면 얼마든지 더 좋은 기회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직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본의 아니게 편집자가 소수 인력이 되어 버린 이유다. 위에서 실컷 떠들었듯 나는 전문직에 종사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디 내밀기도 요상한 스펙으로 출판업계에 덜컥 발을 들였다가 정신 차려 보니 6년째 여기까지 밀려와 있었다.


첫 취업 이후 출판업계 탈출 시도 2번 실패, 출판업계 내 이직 3회 차. 개미지옥이 따로 없다. 나는 오늘도 여전히 작가의 꿈을 꾸며 다른 작가의 초고를 편집한다. 솔직히 누가 날 아무도 없는 방에 가두고 사식 넣어 주면서 내 글만 쓰게 해 주면 소원이 없겠다.





《도기의 기묘한 모험》 시리즈 2편에 계속 → 무스펙 비전공자가 출판사 취업 뽀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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