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GI Oct 12. 2020

6년 차 웹소설 편집자가 퇴사를 준비하는 이유

《도기의 기묘한 모험》 시리즈 3편


이제 2편에 걸쳐 다 들키고 말았다. 내가 6년 내내 웹소설만 파고든 편집 전문가가 아니란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6년 차 웹소설 편집자라고 사기 치는 이유는, 지난 세월의 경험들이 출판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POD 편집자 2년에 교재 타이핑 6개월에 전자책 영업자 1년 3개월에 웹소설 편집자 1년 9개월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지금의 나를 아울러 표현하기엔 너무 길다.




《도기의 기묘한 모험》 시리즈 목차

1편. 어쩌다 보니 편집자로 살기
2편. 무스펙 비전공자로 출판사 취업 뽀갠 후기
3편. 6년 차 웹소설 편집자가 퇴사를 준비하는 이유



언제까지 편집자


나는 내 모든 역량을 지금 일에 쏟아부으며 나름대로 회사에 필요한 직원으로 자리 잡았다. 웹소설 팬이라면 제목만 말해도 반가워할 만한 십수 종의 킬러 타이틀에 기여했다. 내 손을 보태서 제작된 웹소설 이북만 2천 권 가까이 된다. 그러니 웬만하면 내가 6년 차라고 말하는 점을 너그럽게 이해해 준다면 좋겠다. 어쩌면 나도 찔리는 구석이 있기에 세 편의 글에 걸쳐 변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편집자로 인정받고 싶어서 이 글을 썼나’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대답은 간결하게 ‘아뇨’이다. 어이없어하지 말고 마저 읽어 주길 바란다.


나는 여전히 지긋지긋한 출판업계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어느 조직에 소속된 ‘웹소설 편집자’ 말고 나 ‘DOGI’의 브랜드를 키우고 싶다. 1편에서 말했다시피 나는 작가가 되지 못해 차선책을 선택한 불순한 편집자다. ‘유명작의 편집자’보다는 ‘유명작의 작가’가 되고 싶은 갈망이 오랫동안 축적되어 있다.


이 글을 백지에서 처음 쓸 때, 가제목을 ‘글밥만 먹던 사람도 셀프 브랜딩 가능할까’로 잡았었다. 쓰다 보니 과거 얘기로 구구절절해져서 화들짝 놀라 제목을 바꿨지만. 이렇듯 나는 셀프 브랜딩에 관심이 많다. 요즘 대세인 ‘직장인 투잡’이나 ‘N잡러’, ‘디지털 노마드’, ‘1인 기업’ 등에 대해 공부하느라 퇴근 후 거의 모든 여가 시간을 쏟고 있다.


최근 한 달은 내내 셀프 브랜딩에 대해 고민했다. 나는 대단한 능력 없이 글밥만으로 먹고살아 온 사람이었다. 남의 글밥으로 밥상 차려 주는 직업이라도 글밥은 글밥이다. 그러니 당장 내겐 브랜딩을 할 수 있는 자산도 글밥이 전부다. 아쉬우니 하나 추가하자면 출판업계 밑바닥에서부터 기어 올라온 인내심 정도가 있겠다.


없던 자산을 새로 창조하기엔 재능이 빈약하고 재직 중 물리적인 시간도 부족하다. 그나마 기본적인 글쓰기 능력은 있으니, 이거라도 뾰족하게 갈고닦아서 이직처 제출용 포트폴리오 말고 나 자신을 세상에 소개하는 포트폴리오를 쌓아 가고 싶다.


나는 잡탕 뺨치는 경력만큼 도전도 다양하게 한다. 브런치도 셀프 브랜딩을 위한 여러 가지 도구 중 하나이다. 5년쯤 뒤에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 여전히 업계 탈출에 실패한 채 10년 차 편집자라고 사기 치고 다닐 수도 있다. 확실한 건, 5년 뒤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5년 치 경험을 더 가졌으리란 사실이다.


지금까지 6년째 준전문가도 못 된 기묘한 월급쟁이 편집자 이야기를 세 편에 걸쳐 이야기해 봤다. 장황하게 썼지만 결론은 다음 소제목 한 줄이다.




이제 남의 글 말고 내 글 좀


셀프 브랜딩의 관점에서 현재 내가 가진 무형 자산을 정의하면 이렇다.


1. 웹소설 업계 종사자로서 구체적인 시장 정보를 제공하거나, 웹소설 업계 취준생을 대상으로 취업 관련 팁을 공유할 수 있다.
2. 직장인이자 웹소설 작가로서 직장인 투잡으로 웹소설 쓰는 법을 먼저 체험하고 시간 관리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다.
3. 웹소설 편집자 겸 작가로 웹소설 작법과 출판 노하우에 대해 양면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4. 사실 그냥 웹소설만 열심히 써서 그 자체로 잘되면 소원이 없겠다.
5. 이 모든 과정에서 겪은 꿀팁이나 문제 해결 과정을 적절한 콘텐츠로 가공해서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한다.


1, 5번은 알겠는데 2, 3, 4번은 왜 뜬금없이 작가 얘기냐고 할 수 있겠다. 출판사 재직 경력에 비하면 미미해서 말할 짬이 없었는데, 이직 도중 공백기에 조금씩 쓴 웹소설로 어떤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맺었다. 업계 종사자라고 밝히지 않은 순수한 내 집필 성과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아직 탈고하지 못해서 미출간 상태지만, 이것도 셀프 브랜딩을 위해 나아갈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글밥만 먹던 사람도 셀프 브랜딩 가능할까’에 대한 답을 내게 공짜로 알려 주는 사람은 없다. 내가 무스펙으로 처음 쓴 편집자 이력서가 대략 3천30만 원의 부산물이었듯이. 어쨌든 멋모르고 라노벨 편집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던 나는 7년이 흐른 뒤 대강 많이 다르진 않은 느낌의 웹소설 편집자가 되어 있다.


다시 이만큼의 세월이 흘렀을 때의 나도 또 그럴 것이라 믿는다. 대강 많이 다르진 않은 느낌의 셀프 브랜딩을 이루고, 그간의 과정을 또 구구절절 적으면서 하소연하고 있을 미래를 그려 본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어쩌다 이런 두서없는 이야기를 읽고 있을까. 첫 편에서 내가 제안한 ‘뒤로 가기’를 누르지 않고 여기까지 봐 주다니 무척 고맙고 신기하기도 하다. 몇 년 뒤 내가 DOGI로서 셀프 브랜딩에 관한 경험을 다시 이야기할 때, 당신이 이 글을 읽느라 기꺼이 내준 시간은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응원으로 남을 것이다.





《도기의 기묘한 모험》 시리즈 끝.

매거진의 이전글 무스펙 비전공자가 출판사 취업 뽀갠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