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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라 Apr 10. 2020

결혼 생활에 콩깍지가 필요한 이유

원래 처음부터 다른 존재였다

엄마 어디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은 이모네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다. "오늘 이모네 가지 말고, 엄마랑 대공원 가자. 괜찮지?" 갑자기 엄마는 왜 대공원으로 향했을까.


전날 엄마와 아빠가 싸웠다. 그다음 날 아빠는 주말마다 가는 운동을 하러 나갔고, 엄마는 아빠가 나간 사이 나와 내동생을 데리고 이모네 가기로 한 것이다. 아니, 대공원을 가기로 했나 보다. 


잊고 있던 옛날 일이 떠오른 건 요즘 들어서다. 신랑과 싸우고 감정이 올라와 화가 치밀면 엄마와 대공원 가던 그때가 생각난다. 엄마는 아마 답답했을 것이다. 아빠와 싸우고 우울했을 것이다. 집을 나와 어디로든 가고 싶었을 것이다. 갈 곳도 없고 언니나 볼 겸 집을 나왔지만 막상 언니를 보려니 자신이 없다. 무슨 일 있냐고 묻는 언니에게 감정을 숨길 자신이 없고, 그렇다고 언니에게 부부 싸움 이야기를 하기도 싫다. 그렇게 갑자기 정한 대공원 가는 길. 그날 엄마와 내동생 나, 이렇게 셋이 그래도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저녁 엄마와 아빠는 말없이 저녁 상 앞에서 밥을 먹었던 기억도 같이 난다.



우리 잠시 떨어져서 지내볼까


요즘 집에서 짜증이 늘었다. 신랑의 행동 하나하나 말투 하나하나 거슬린다. 결혼 전 보이지 않던 그의 성향이 낱낱이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몇 가지 성향은 곱게 보이지 않는다. 잔소리가 늘어간다.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가 난다.

지난 주말에는 왜 그랬더라. 잘 생각나지도 않는 작은 일들을 가지고 쓸데없이 감정을 소모하고 말았다. 아마 컴퓨터 모니터를 끄지 않았다고 핀잔을 주는 신랑이 속이 좁아 보여 화를 냈던 것 같다. 한 번쯤 모니터를 끄지 않을 수도 있지, 나 몰래 쓱 꺼주면 얼마나 멋있어라고 생각하면서. 나 역시 김치냉장고 깊숙한 곳에서 신랑이 몰래 먹고 숨겨둔 과자봉지를 발견하고 한바탕 잔소리를 해댄 후였다.

신랑에게는 꼼꼼하지 못한 내가 답답하고, 나에게는 통제력 없이 군것질을 하는 신랑이 못마땅하다.


요즘 코로나19로 외출도 못하고 때때로 재택근무를 하는 바람에 연달아 3일 넘게 집에서 붙어있으니 더 많이 부딪치는 것 같다. 이렇게 내내 붙어서 짜증만 내다가 출근 전날 밤이 되면 우울해진다. 내가 이러려고 결혼했나 싶기도 하고, 주말 내내 감정 소모만 하고만 내 처지가 처량하다.


- 우리 잠시 떨어져서 지내볼까.

- 내가 더 잘할게. 우리 조금만 더 노력해보자.


막상 떨어져 지내려면 갈 곳도 없다는 처지를 생각하니 이렇게 또 장담하지 못할 다짐으로 그날의 화를 급하게 꺼본다.


엄마도 그때 갈 곳이 없어 우리를 데리고 대공원이나 가자 했던 게 아닐지. 그 시절 내 나이였을 엄마가 자꾸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콩깍지는 과학이다


뉴욕 주립대 심리학과 산드라 머레이 교수는 한 가지 실험을 한다. 우선 실험에 참가한 부부에게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또 자신의 배우자는 어떤 사람인지 평가하도록 했다. 여기서 산드라 머레이 교수는 한 가지 측정을 더 하게 되는데 바로 참가자들의 친구들에게도 같은 문항지를 주고 참가자들을 평가했다.

실험 결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와 그렇지 않은 부부간의 차이가 있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의 경우, 본인과 친구가 한 평가보다 배우자가 한 평가가 더 높게 나타났다. 반대의 경우는 배우자의 평가가 가장 낮았다. 


말 그대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는 아직까지 서로에게 콩깍지가 씌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싸웠다고 치자. 서로를 평소 좋게 보고 있는 부부의 경우 싸움을 해도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 다시 좋은 관계로 돌아가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반면, 평소 서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부부의 경우 싸움을 하게 되면 점점 서로의 안 좋은 면을 보게 되어 갈등을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난 '콩깍지'가 벗겨지고 말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사람은 꼼꼼하고 세심한 사람인데 그때는 자상했던 것이고 지금은 예민한 것이다. 작은 장점도 크게 보고 단점은 덮을 수 있었던 그 '콩깍지'가 없어져 버렸다. 그러다 보니 작은 단점이 크게 부각되고 보이던 장점은 자취를 감췄다. 요즘 매일 투닥거리는 이유다.


그때 그랬던 것처럼 지금 나는 내가 보려는 것만 본다.

우리 부부관계를 위해서라도 지금 나에게는 '콩깍지'가 필요하다.



원래 하나였던 반쪽을 다시 찾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른 존재였다


사랑은 강한 동질성을 기초로 확장된다.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며, 대답하지 않아도 동의하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그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서로의 동질성을 확인하기보다는 격렬하고 가슴 아프게 서로의 차이점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리스토파네스의 말처럼 '원래 하나였던 반쪽을 다시 찾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른 존재'였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대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다.

<이수현, '사랑의 발견' 중>


예전에 메모를 해둔 책 구절을 다시 보게 되었다. 메모를 했던 그때로부터 지금으로 오는 동안 내가 잊고 있었다. 그와 나는 원래 다른 존재였다는 것 말이다. 

신랑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던 것은 어떻게든 '내 결혼생활'에서 상대를 나에게 맞추려고 했던 행동이었다. 내 결혼생활이 아니라 '우리 결혼생활'이라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점점 결혼생활을 완벽하게 나에게 맞추겠다는 집착이 되었다.

나와 다른 신랑의 모습은 고쳐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언짢은 감정은 점점 습관이 되고 말았다. 자연스럽게 신랑에 대해 불만거리가 늘어갔다. 

그렇게 콩깍지도 떨어져 나갔다.


오늘 퇴근 후 나는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 평소였으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대의 방식'이 또 내 눈앞에서 지나간다. 이번에는 그저 바라보기로 한다.

그 역시 나처럼 '처음부터 다른 존재'라는 것을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좋았겠다. 이미 생겨버린 마음의 생채기를 가만히 바라보며 앞으로도 오늘처럼 잘할 수 있을지 생각하다 눈을 감아버렸다.


그가 웃는다. 나도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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