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은 협화여, 얼쑤 좋다!
굿은 협화여, 얼쑤 좋다!
이번 방학은 동아리활동에 올인한 방학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학, 연, 동
대학생활 필수 3요소라고 한다. 학점과 연애와 동아리!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왜 동아리가 대학생활 필수 3요소라고 하는지 의문을 품기도 한다. 동아리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좋은 학점도 아니고,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스펙이 쌓이는 것도 아닌, 단지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하는 활동이라는 게 끝이라는 이유에서이다.
나도 현재 동아리 활동을 하나 하고 있다. 풍물동아리인데, 처음에는 사물놀이 공연을 보고 멋있어서 들어왔다가 풍물의 매력에 빠져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북, 꽹과리, 장구, 징은 아마 사물공연에서 접한 형태인 경우가 많다.
사물놀이는 마당에 앉아서 이루어지는 국악으로, 악기를 매고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풍물과는 달리 한 자리에서 앉아서 공연을 선보인다. 농악(풍물)보다는 장단이 복잡하고 빠른편이다.
그와 다르게 풍물은 공연이라기 보다는 놀이이자 의식이다.
누구한테 선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흥을 돋우기 위한 놀이이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비는 굿이기도 하다. 풍물패원들은 악기를 하나씩 매고, 역동적으로 돌아다니면서 구경꾼들과 호응하고, 분위기에 취한다. 마을마다 고유한 장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구전되어 내려온 장단이기 때문에 지역마다 차이가 명확하다. 사물놀이보다는 장단이 단순하다.
풍물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람 부닺히는 데에 있다. 길게는 2~3시간 동안 계속되는 판굿(풍물공연)을 하다보면 힘들고 체력이 많이 소모되지만, 서로의 얼굴을 보면 자연스럽게 미소가 얼굴에 번지는 그것이 바로 풍물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뿐만 아니라 구경꾼까지 함께 끌어들여 판굿의 참여자가 되게 하기도 하며 모두들 넘치는 흥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임실군 필봉리에서는 굿을 협화라고 이야기한다.
협화는 서로 협력하여 화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마다 열리는 굿은 바로 소통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풍악의 매력이고, 우리 조상들이 유희로 즐겼던 까닭이다.
농악은 주로 마을단위로 가락이 나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5대 농악은
웃다리 평택농악
영동 강릉농악
우도 이리농악
좌도 필봉농악
영남 진주삼천포 농악
으로 지역별로 하나씩 있다. 이들 농악은 각각 유네스코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에도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중이다!!! ٩(∗ ›ω‹ ∗)و
내가 속해있는 단대 풍물패 연합 동아리(이하 단풍연) 같은 경우는 좌도 필봉농악 가락을 전수받는다. 필봉마을 3대 상쇠셨던 양순용 선생님께서는 대학생에게 풍물을 전수하시는 것을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을 하셨고, 4대 상쇠신 양진성 관장님께서도 매 여름방학마다 대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힘을 쏟으시곤 한다.
여름방학이 되면 전국 각지에 있는 대학에서 필봉농악을 배우러 임실군으로 오며 관장님의 가르침을 받는다.
당연히 우리 단풍연에서도 이번 여름에 전수를 다녀왔고, 많은 가르침을 듣고 새기고 왔다.
하지만, 이번 년도 여름이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바로 필봉 마을굿 축제에서 열리는 풍물 대회를 출전했다는 점이다. 필봉농악에서는 매년 '필봉마을 굿 축제'를 벌인다.
요렇게, 아침부터 밤까지 꽉 찬 일정으로 진행되는 필봉마을 굿축제이다.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만큼, 평택농악이나 구례잔수농악 등 평소 잘 접하지 못했던 농악을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일 뿐만 아니라, 필봉 굿에 대한 토크콘서트를 듣거나 공연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좌도 농악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 축제에서 유일하게 상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대회가 있다. 바로 지난 8월 18일에 열린 '전통연희 경연대회'!!
총 부문이 크게 농악경연대회 / 개인놀이 로 나뉜다. 하지만 이번 경연대회는 작년과 달리, 농악 경연에 대학생과 일반인을 구분을 두지 않고 함께 평가했다....!!!!!!
작년까지는 모집단이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대학생 수준의 경연대회가 이루어졌는데 이번 년도는 오랫동안 풍물을 해 오신 사회인 팀과 경쟁을 해야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상당했다. 사실상 수상을 포기하자는 분위기도 동아리 내에서 팽배했다ㅋㅋㅋ
그만큼 우리의 역량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고, 과연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있었다. 하지만 방학 두 달동안 정말 우직하게 연습했고, 맞춰봤던 가락도 다시, 다시, 다시 완벽하게 일치할 때까지 맞춰갔다. 미련하고 비효율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하나씩 맞춰나갔다. 이제 우리 풍물패원 간의 합이 얼추 맞다고 생각이 들때 쯤, 정말 운이 좋게도 조교님께서 우리의 판제(판굿의 구성)를 봐주시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짧은 시간의 코칭이었지만 한 마디 한 마디에 뼈가 있으셨다.
대회는 연습과는 달리 빠른 호흡으로 몰아쳐야 하면서도, 그 속에서 필봉의 전통을 고수해야 함을 일러주셨다.
필봉에서는 '풍류굿' 가락이라고, 매우 느리고 여유롭게 악기를 치는 가락이 있다. 일반 대학생들이 농악인의 여유와 바이브를 표현하기에는 어렵기에, 가장 까다롭고 점수를 많이 못 받는 가락이기도 하다. 하지만 필봉의 최대 지향점은 풍물패원 간의 '협화'이기에, 이 때 풍물의 분위기에 취해 가장 많은 흥과 여유를 보여주는 점이 대회에서 정말 중요했다.
물론 빠르고 복잡한 가락을 잘 치는 것도 중요하고, 화려하게 보이기 위해 많이 뛰고, 도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필봉의 느낌을 살리는 것이었다.
필봉 가락은 다른 지역의 농악에 비해서도 상당히 단순한 편이다. 그리고 그 단순함이 멋이 되는 것이 바로 필봉농악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단순하며 여유로움이 극대화된 가락인 '풍류굿'을 살리는 것이 중요했고,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느림의 미학이 필봉의 맛임을 배웠기에 고수하고자 했던 노력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통일성'이라는 점도 염두에 둔 채 판제를 끊임없이 수정하고 보수했다. 개개인의 역량도 매우매우 중요한 요소임은 맞지만, 풍물은 협화다. 굿은 모두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장이다. 그것이 비록 굿을 선보이는 경연대회라 해도 달라지진 않는다. 모든 풍물패원들이 통일성 있게, 상쇠의 가락에 맞춰 악기를 치고 발림과 너름새를 했을 때 풍물의 멋은 극대화된다.
심사위원들은 우리가 필봉의 전통을 고수하기 위해 얼마나 끊임없이 판제를 수정했는지 알지 모르신다. 우리는 심사위원들이 노력을 알아주시기를 바라며 연습을 거듭했을 뿐이었다.
2018.08.18 드디어 우리의 노력을 쏟았던 대회가 끝나고, 낮잠을 자고 있던 중이었다.
진짜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우리가 1등이라고 한다. 만화에서 늘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날 때 뺨을 쳤던 게 이해가 안 됐는데 정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너무 믿기지 않아서 내 뺨을 치며 꿈이 아님을 확인하게 되더라..!!ㅋㅋ
우리가 1등이라고?? 뭐야 진짜야? 말도 안돼 거짓말하지 마..
그러고 심사위원 점수표를 확인하니 정말! 1등이었다. 사회인패들과 매번 좋은 성적을 거두던 타 대학 풍물패들 사이에서 얻은 1등이었기에 더욱 믿기지 않았다.
고생하신 선배님들과 많은 친구들도 울면서 기쁨을 만끽했지만 아직도 우리가 1등이라는 것에 어안이 벙벙했다. 도대체 왜..? 왜냐하면 우리는 화려한 멋도 없었고, 인원수도 다른 패에 비해 적었기 때문이었기에 1등은 기대하지도 않았던 결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히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심사위원들이 우리의 판제에 묻어난 필봉의 전통을 알아채주신 것이 아닌가 싶다. 화려한 멋은 없었지만 소박함과 단순함 속에 여유로움을 최대한 살리고자 했고, 대회라는 특성에 맞게 어느 정도 속도감 있게 판굿을 진행했던 점이 큰 가산점을 얻은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좋아하는 방탄소년단이 한 말이 있다.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많이 회자된 말이기도 하다.
너의 노력은 너 자신만 알면 돼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도 우직하게 연습을 해왔던 멤버의 말이기에 더욱 다가왔던 말이었다.
내가 들인 노력을 남에게 티를 내지 않고 혼자만의 기록으로 남겨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끈기가 있어야 하는 지 잘 안다.
그만큼 우린 우리의 힘듦에 대해 위로를 받고 싶고, 타인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노력을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 가장 잘 안다면, 그것이야말로 나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이번 풍물 대회를 준비하면서도, 중간중간에 이러한 세심한 수정부분들을 심사위원분들이 눈치채주실까? 하는 의문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좋은 선배님들과 이번 대회 상쇠를 맡아준 언니가 필봉의 정수를 그대로 가져가고자 했던 노력을 해주셨고, 그에 여러 패원들도 동의했다. 결과가 어떻든 우린 필봉의 feel!을 가져가자고 했던 것이었다.
나의 노력을 내가 알아줬을 때, 후회와 미련이 남지 않는 것 같다. 내 노력에 대한 나의 확신이 있기에 자부심이 생긴다. 이것이 나의 최선이라는 것을 알기에 내 행동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 결과가 어떻든지 감사하게 된다.
비록 이번 풍물대회의 결과는 1등이라는 우수한 결과로 마무리지었지만, 나는 우리 풍물패가 4등, 5등이라는 성적을 거뒀어도 실망하지 않았을 것 같다. 우리는 우리가 가장 필봉의 기본을 잘 지키고자 했음을 알고있었고, 또 많은 연습을 통해 우리 패원들 간의 합을 잘 맞추어갔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배들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또 풍물에 매력에 다시 빠지게 된 대회였다.
예상 외의 좋은 성적을 거둬서 더더더더더 좋았구!ㅎㅎ
이번 방학 좋게 마무리한 것 같아서 행복하다╰(✿´⌣`✿)╯♡
필봉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