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산책
한 사람이 두 팔에 강아지를 안고 걸어온다. 우리는 가로등 불빛의 속도로 마주 보며 스친다. 잘 못 본 건가? 양배추! 빛은 강아지가 양배추란 사실을 드러낸다. 크흑, 막 들어선 입추의 달빛에 도드라진 채소의 양감 때문인가? 양배추가 무엇이기에 저리도 소중하게 끌어안아주는가. 갓 베인 강아지와 곤히 잠든 양배추 덩이에 마음을 겨누고, 잠시 두 사물의 간과 극을 걸어본다. 멀리의 착각이 가까운 소유가 돼버린다는 즉시각적인 제시에 몸이 얼어붙는다. 입꼬리를 올려 나누는 우리들의 가벼운 눈인사 뒤로 다습한 여름 밤, 불쑥 살갗을 훑고 지나가는 서늘한 바람. 착시와 사색은 필요하다 말해두자. 제시를 만나는 일, 제시를 제시하는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