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도 네 것도 아닌
"할머니, 앉으세요, 여기."
덤덤하게 건네는 진심의 말, 공원의 벤치도 가끔 양보가 필요하다.
잠깐의 휴식 후 일어나 걷는 걸음이 가볍다. 온몸을 휘감는 기분 좋음. 으흐윽!
인간과 동물의 등과 엉덩이, 발바닥과 어깨를 기댈 수 있도록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따지지 않고 제 몸으로 받아주는 벤치의 일상.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거기서 내내. 주인이 없는 사물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윤이 나는 것은 당신도 앉고 나도 앉고 저이도 그이도 앉고 눕고 쉬게 하는 그만의 여유에서 나오는 광이겠지. 마르고 번져나가며 덧없이 쌓이는 자유로운 장면들이 수없이 중첩된다.
먹자골목 모퉁이에는 할머니가 앉아계신다.
울긋불긋한 소쿠리마다 자두, 복숭아, 토마토와 체리를 붉은 탑들처럼 쌓아놓으셨다.
비주얼 아트가 따로 없다. 입안에 곧바로 침이 고인다.
"할머니, 자두하고 복숭아 한소쿠리씩 주세요."
"체리도 사가요, 싱싱하고 무척 달아." 하신다.
"네 체리도 담아주세요."
할머니의 과일은 양이 적고 비싸지만 늘 신선하고 맛이 좋다.
믿고 직접 사는 소비를 즐긴다. 동네에 몇 안 되는 단골집이다.
지인의 할머니께서 생전에 손녀들에게 밭일을 시키실 때면 꼭 "한소쿠리"만큼의 수확만 하게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이후로 소쿠리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과함도 모자람도 없이 딱 한소쿠리만큼의 합리적인 노동과 가치에 대한 할머니의 철학이 있으셨으리라.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들은 어떤 분들이셨을까. 모두 다 궁금하고 그리운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