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아주 정확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이 사람은 내가 상상하는 그림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이 원하는 걸 만들 수 없다는 것.
처음엔 괜찮다.
서로 다르니까, 조율하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디자인이 아니라 ‘관계의 문장들’을 다듬게 된다.
고객은 이미지로 말하고,
나는 기능으로 설명하며,
그 사이의 차이를 ‘말’이 아닌 ‘실망’이 메운다.
디자이너라는 이름은
창조자이기도 하지만,
때론 ‘해석자’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픽셀로 바꾸는 일.
기대와 현실 사이에 놓인
좁은 의자에 앉아
양쪽을 동시에 설득하는 일.
그런데 그 설명이,
설명이 아니라 변명처럼 들릴 때가 있다.
내가 아직 스킬이 부족한 건 아닐까,
조금만 더 잘했으면
고객이 실망하지 않았을 텐데—
그 자책이 목구멍 끝까지 차오를 때면
말이 잘려나간다.
결국
"죄송합니다, 환불 도와드릴게요"
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될 때.
마치 내가 부족해서,
내가 못나서
한 사람을 보내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떠나는 고객의 뒷모습은
멀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내 안의 ‘못함’이 등을 돌리는 것 같아서
그 뒷모습을 보는 일은
늘, 조용한 패배 같다.
하지만 오늘은
이렇게도 생각해본다.
내가 못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내 언어와 너무 달랐던 건 아닐까.
모든 일을 잘하는 사람은 없고,
모든 취향을 맞추는 디자인도 없으며,
모든 이별이 실패는 아니다.
나는 여전히 만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내가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색과 형태로.
그래서 어떤 날은
환불보다 더 좋은 선택이
내 마음을 지키는 것이라는 걸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