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돌아가고 싶은, 나였던 시절.

by 이손끝


얼마 전 사람들에게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았다. 대부분이 고등학생 시절을 꼽았다. 왜일까. 초등학교도 있고, 중학교도 있었는데 유독 고등학생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이 많았다.

생각해 보면 그맘 때의 시간은 이상하다. 길게 느껴진다. 초등학교는 정신없이 지나가고, 중학교는 뭔가 어정쩡하다. 그런데 고등학교 시절은 유독 선명하게 남는다. 아마 심리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그 시기는 자아 정체감이 급격히 형성되는 시기라서 그렇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나는 누구인가'를 깊이 고민하기 시작하는 때다. 처음으로 사회적 관계 안에서 성숙해진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미래라는 시간을 직면하게 되는 시기다. 그래서 그때의 경험과 감정은 더 강렬하게 각인된다. 시간의 밀도가 다르다.

유독 그 시절이 길게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같은 하루라도 감정의 진폭이 크고, 처음 겪는 감정들이 많아서다. 친구와 싸운 일, 어떤 말 한마디, 짝사랑의 설렘, 선생님의 눈빛, 밤새 교과서에 낙서했던 순간들까지. 감각 하나하나가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나는 요즘 고등학생인 조카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표정은 무심하다. 벽이 있다. 화난 것도 아닌데, 딱히 기쁜 것도 아닌 얼굴.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생각과 소용돌이가 있을까 궁금하다. 고등학생 시절은 누구에게나 그렇다. 속은 복잡한데 겉은 무심한 척하게 된다.
그것도 심리학적으로는 자율성의 발달 때문이란다. 어른들의 평가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커지는 시기라서, 자연스레 감정을 드러내기보단 숨기고 거리를 둔다고. 그래서 어른이 다가가면 더 경계한다.

고등학생인 조카를 볼 때마다 말 걸기가 조심스럽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실례가 될까, 혹은 상처가 될까 두렵다. 저 표정 뒤에 무얼 담고 있는지 모르니 더 어렵다.
하지만 문득 든 생각은 이것이다.
벽을 허물려고 애쓰지 말자. 대신, 문을 두드릴 타이밍을 기다리자.

그 나이 아이들은 벽이 필요하다. 그 안에서 자기만의 언어와 생각을 키우는 중이니까. 억지로 벽을 넘으려 하면 더 단단해진다. 대신 문은 있다. 때로는 스스로 열 때도 있다. 그때 가볍게 한 마디 건네면 된다.

나는 조카에게 가끔 이렇게 묻는다. "요즘 재밌는 거 있어?"
별 답은 없다.

고등학생 시절은 누구에게나 복잡하고, 외롭고, 길고, 아프다. 그러면서도 가장 빛나는 때다.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도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이 많은 거다. 가장 많은 감정을 느꼈던 시기니까. 가장 나였던 시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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