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인 줄 알았어

by 이손끝

그땐

사랑인 줄 알았어

그렇게 믿는 게

더 쉬웠으니까


혼자라는 게

조금은 버거웠던

그때라서


네가 해준 말들

그 표정들

예쁘게 받아 적었어

나를 속이며


이렇게 잊힐 줄 알았는데

그렇게 끝날 줄 알았는데

아직도

가끔은 그 방 공기처럼

그때가 스며와


문득

창을 열다 멈춰서

혼잣말처럼

괜찮다고 중얼거려


다들 그러더라

시간 지나면 괜찮다고

나도 그래,

그냥 그런 척 지내


그 밤엔

그게 전부였으니까

그게 사랑 같았으니까

사랑이라 믿는 게 쉬웠으니까





작가노트:


나는 20대에 서울의 작은 반지하 단칸방에서 홀로 살고 있었다. 낯선 도시. 익숙하지 않은 방.
밤이면 고요했다. 고요해서 더 외로웠다.
그런 나에게 다가온 그는 다정했다. 잘 챙겨주었다. 밥을 사주고, 아플 때 약을 사다 주고,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안부를 물었다.
그때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이라는 게, 이런 것인 줄 알았다.

지금 돌아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된다.
그저, 내가 기댈 곳이 필요했던 것뿐이다. 누군가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주기를 바랐던 것뿐이다.
그 사람은 그런 내 외로움을 알고 있었고, 그걸 건드렸다.
나는 그걸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에서, 말에서, 행동에서, 그저 욕망이라는 것이 스며 있었다는 걸.
매일이 뭔가 구질구질했다. 사랑의 약속들은 그럴듯했지만, 실상은 허무했다.
나는 언젠가부터 점점 숨이 막혔다.
이게 사랑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아니, 이건 사랑이 아니구나.

다행히, 내가 떠나겠다고 했을 때 그는 담담히 말했다.
“그래, 가.”
그 말이 고마웠다.
억지로 매달리지 않아서, 잡아두려 하지 않아서.

그렇지만,
그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서 자꾸만 스멀스멀 떠오른다.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까지 마음을 내어주었을까.
생각하면 스스로가 미워지기도 하고, 또 안쓰러워지기도 한다.
그 시절의 나는 너무 외로웠으니까.
그 외로움을, 누군가가 조금만 채워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다.
어떻게 하면 지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떠올라도 힘들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요즘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결국은, 시간일까.
시간이 더 흐르면, 이 기억도 조금씩 흐려질까.
아니면, 스스로 용서해야 할까.
그 사람을 용서하는 게 아니라,
그때의 나를.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나를.

나는 그걸 연습하는 중이다.
그때의 나를 자꾸만 안아주는 연습.
그때의 나는 정말 많이 외로웠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고.

상처는 없앨 수 없겠지만,
그 위에 다른 기억들을 쌓을 수는 있지 않을까.
좋은 사람들, 좋은 시간들, 좋은 마음들.
그런 것들이 쌓이면, 그때의 기억도 조금은 희미해지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가끔 그 얼굴이 떠오를 때면 조용히 눈을 감는다.
숨을 천천히 쉬고, 마음속으로 말한다.
괜찮아. 지나갔어. 이제는 괜찮아질 거야.

아직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정말 언젠가는
그 기억을 떠올려도 마음이 덜 아프게 되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진 나로,
조금 더 자유로워진 마음으로
그 시절의 나를 웃으며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믿고 있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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