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큰딸은 자주 친구 이야기를 꺼낸다. 누구랑 친해졌고, 또 누구와 다퉜고, 그게 어땠는지를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뒤에 조용히 앉아 듣는다. 그러다 잠깐, “나도 남자친구 사귀고 싶어.”라는 말을 했다. 웃으면서, 장난처럼. 나는 함께 웃었지만, 그 말은 웃고 나서도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벌써 이렇게 컸구나. 딸은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 머리로는 안다. 당연한 성장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마음은 이상하게 저릿했다. 어릴 땐 엄마 아빠밖에 모르던 아이였는데, 어느새 마음을 자주 다른 곳에 두고 있었다. 나는 점점 이 아이의 바깥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떠나는 걸 느낀다. 내가 모르는 이름, 내가 모르는 노래, 내가 모르는 웃음. 내 품 안에 있던 아이가 내 세계를 넘어서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건 분명 기쁜 일인데, 한쪽 끝에서는 묘하게 두려운 일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랬다. 어릴 땐 아빠 품을 따랐다. 그 품이 전부였다. 그러다 어딘가부터 멀어졌다. 내가 더 중요해졌고, 나만의 가족이 생겼고, 내 아이들이 내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알고 있다. 딸도 그렇게 갈 거라고. 머문다는 건 잠시일 뿐이라는 걸.
나는 아이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결국 이 사랑이 짝사랑이 될 거란 걸 안다. 아이에게 나는 점점 관심의 바깥이 되고, 중요한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거다. 아이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는 입구는 점점 좁아지고, 때론 아예 닫힌다. 서운하지만 이해된다.
그래서 생각한다. 이 사랑은 짝사랑이라고.
나는 사랑을 건네고, 아이가 응답하지 않더라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응답해주면 감사한 일이고, 응답이 없어도 어쩔 수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하는 것. 딸이 나를 바라봐주는 순간이 있다면, 그땐 정말 열렬히 사랑하자고 마음을 먹는다. 다행이 아직 딸은 내 품에 안겨 자는 걸 좋아한다. 아이처럼 품을 파고들 때면 더 꼭 안아준다.
나는 딸들이 엄마에게 느끼는 사랑은 의무나 짐 보다는 기쁨이고, 쉼이고, 충전이길 원한다. 언제고 힘들 때면 와서 사랑을 한껏 받고 다시 씩씩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아이들이 떠나는 걸 막지 않고, 묻지 않고, 웃으며 기다리는 사람이고 싶다. 나중에 아이가 돌아보았을 때, 등 뒤에서 늘 무언가 지켜보는 눈이 있었구나, 생각하게 되는 그런 사람. 존재만으로 따뜻했던 기억으로 남고 싶다.
나는 내 딸들을 열심히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이제 짝사랑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하루하루 자라나는 아이를 보며, 나는 조금씩 마음의 거리를 조절한다. 사랑하는 만큼 붙잡지 말자고, 좋아도 집착하지 말자고, 매일 스스로에게 말한다. 이 아이가 내게 시선을 줄 때, 내 말을 듣고 웃어줄 때, 내 품에 안겨올 때 그때만큼은 눈을 마주치고 마음껏 사랑하려 한다.
다시 오지 않을 지금이, 나중에는 전부 추억이 될 테니까. 지금 내가 건네는 이 사랑이 짝사랑이라 해도,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