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시작하지 못하는 비장함

by 이손끝


ccd86b54-eeec-4fc0-9d04-805127f9b539.png



나는 요즘 글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두고 고민을 반복한다. 당장 어제까지도 그랬다. 밥과 글의 사이에서, 내가 열지 못한 문 앞에서 서성이며, 자려고 누우면 곁에서 글을 쓰자고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으며. 하지만 나는 내가 쓴 글이 별로니까, 내가 잘 못하니까, 재능이 없어 보이니까,라고 별의별 이유를 다 붙여가며 쓰지 않고 생각만 하며 하루를 보냈다. 문장을 생각하고, 이야기를 사랑하면서도 막상 키보드 앞에 앉으면 웬일인지 손끝이 무겁고, 마음이 조심스럽고, 문장이 너무 형편없이만 나오는 것 같아 지워버리기를 수십 번. 그렇게 또 한 날을 넘기고 나면, ‘오늘도 못 썼네’라는 허탈한 독백이 남는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밑져야 본전 아닌가?” 글을 쓴다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누가 욕하는 것도 아니고, 쓰다 실패한다고 내 인생이 망하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안 쓰는 쪽이 더 아깝고, 더 무겁고, 더 슬프다. 마흔 넘게 살아본 내가 본 세상은 그렇더라. 내가 아무리 고민하고, 아무리 결심하고, 마음을 다잡고, 날 잡아서 시작해도 안 될 건 안 되고, 그냥 덜컥 시작한 일이 술술 풀리는 경우도 많다는 걸. 그런 걸 운이라고 한다면 해봐야 운이 있는지 없는지 알 것 아닌가? 진짜로 해봐야 내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내 길이 아닌지 맞는지 알 것 아닌가? 그러니 내가 쓰기로 결심했다고, 혹은 내 안에 무언가 있다고 해서 잘될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그렇다고 못 쓸 이유도 없는 거다.


왜 이렇게 혼자만 진지하게, 고요하게, 비장하게 고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마치 소설가의 자격이란 게 어디 멀리서 인증이라도 받아야 할 것처럼. 폼을 잡았던 것 같다. 글쓰기는 진지해야 하고, 의미 있어야 하고, 세상에 감동을 주어야 하고. 그런 무거운 말들 속에서 나는 글을 시작도 못 한 채, 늘 출발선에만 서 있었다. 안 해보면 안 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자꾸만 스스로를 설득하고,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며 미뤄왔다. 그게 얼마나 한심하고 얄밉던지. 결국 가장 큰 방해꾼은 내 안에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좀 가벼워지자.


그냥 쓰자. 뭐라도, 어떻게든, 그냥 손 가는 대로. 굳이 멋진 말이 아니어도 된다. 내 삶이 담긴 조각 하나라도, 오늘 스친 말 한마디라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던 그 순간의 마음이라도. 그걸 적어보자.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으니까. 글쓰기란 원래 그렇게, 거창하게 시작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니까. 언제까지고 ‘언젠가 잘 써야지’ 하며 시간을 보내는 건 너무 아깝다. 황금 같은 이 시간, 가장 소중한 지금을 ‘폼’으로 낭비하지 말자. 그냥, 해보자. 되는지 안 되는지는 해봐야 아는 거니까.


사실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내 안에는 쓸 말이 많다는 걸. 정리되지 않아도, 못나 보여도, 감동적이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흐르고 있는 이 마음은 문장으로 흘러가고 싶어 한다는 걸. 그게 지금까지 나를 이렇게 오래 고민하게 만든 이유다. 정말 쓸 말이 없고, 표현하고 싶은 게 없었다면 나는 벌써 그만뒀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쓰고 싶다. 그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이제 시작하자. 어제까지의 나는 주저했지만, 내일의 나는 그냥 쓴다. 기대도, 망설임도, 의심도 내려놓고. 그냥 쓰자. 내 손끝이 이끄는 대로. 밑져야 본전이니까. 그리고, 어쩌면 본전 그 이상을 얻게 될지도 모르니까.



keyword
이손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에세이스트 프로필
팔로워 154
작가의 이전글밥과 글